말씀

[스크랩]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라 (응답의 약속: 약속어음의 지불만기)

은이dii 2011. 11. 7. 15:44
기도 응답의 확신을 가지라 (응답의 약속: 약속어음의 지불만기)

(3) 응답의 약속어음 지불만기

믿음으로 간구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해왔다. 그런데 그 응답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있는데, 기도하는 즉시 이루어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얼마를 지나서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믿음으로 간구하면, 우선 응답을 약속하신다. 그 후에 즉시 성취되는 것도 있지만, 그 시기가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 내지 몇 십 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예로 미국의 선교사였던 로간 박사의 경우에는 이웃 소녀의 구원을 위하여 무려 40여년 동안 기도한 끝에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이다. 물론 기도하자마자 이루어지는 응답도 많이 있다. 앞에서도 여러 성경적인 실례들을 언급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엘리야의 갈멜 산의 기도와 같이 긴급한 문제들은 즉시 응답된다.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즉시 응답하신다. 바알 신과의 대결에서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즉시 불로 응답하셨고, 대해로부터 손바닥만 한 구름 조각을 일으켜 축복의 소낙비를 내려주심으로, 삼년 반의 기근 중에 하늘로부터 축복의 단비를 끌어내렸다.

노아의 제단에도, 아브라함의 제단에도 기도하는 즉시 그 자리에서 불로 응답하셨다. 한번은 다윗이 인구조사를 지시하여 범죄하므로 백성들이 죽어나가자, 오르난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시고 주의 사자를 명하여 칼을 집에 꽂게 하였던 사건이 있었다(대상 21:1-27). 기도응답의 실례들은 성경에 부지기수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기도의 응답이 즉시 이루어지지 않고 짧게는 며칠에서부터 길게는 수년 내지 수십 년이란 장구한 기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현대 언어로 비유해서 표현한다면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어음의 지불만기가 장기로 되어 있는 경우를 말한다.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께로부터 제단을 쌓고 응답받은 내용 중에 두 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민족적인 것으로 가나안 복지를 허락해주시리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사라를 통하여 후사를 낳게 해주시리라는 약속이었다. 이 두 약속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대화가 끝난 후,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았고, 하나님께서는 이에 불로 응답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자손(백성)에게 사백년 후 사대만에 가나안 복지를 허락하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제단을 쌓고 난후 응답이 이루어질 때가지 무려 사백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씨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신지 무려 24년이 지난 다음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구십 세에 가서야 비로소 아들 이삭을 허락하심으로 응답이 이루어졌다. 이 얼마나 기나긴 세월인가? 이렇게 장구한 세월이 지난 다음에 응답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긴 세월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 주시는가? 하는 문제가 궁금하다. 그러나 답변은 간단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애를 태우다 허락하셔야 직성이 풀리시는가? 너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그 기간의 변수는 하나님에게서보다도 인간에게서 찾아야 한다. 우선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까지 사백 년을 기다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설명해주셨다. 가나안 족속들의 죄가 아직 관영되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가나안 족속을 쓸어버려야 하나님의 약속의 자손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편,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그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성숙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시 창세기 15장 13절로 돌아가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는 기간으로 되어 있다. 왜 이방의 객이 되어야 하는가? 왜 그들을 섬겨야 하는가? 아직도 미숙한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인들이기 때문에 죄악 세상에서 객이 되었고 죄의 법을 섬겨야 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에서 그들을 섬겨야 하는 기간이 사백 년이라는 뜻이다.

이 두 기간, 즉 이방(가나안 땅)에 죄악이 관영되는 기간과 아브라함의 자손(하나님의 약속의 자손)이 연단을 받아 믿음이 성숙하게 되는 기간이 일치하는 것이다. 하나가 빠져나가야 하나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역사이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대명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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