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나 (집중적인 기도: 잠념을 물리치라) (01)
(3) 잡념(雜念)을 물리쳐야 한다
기도할 때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잡념이다. 잡념 때문에 기도를 망치게 된다. 잡념 때문에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잡념 때문에 기도의 줄을 놓치고 횡설수설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줄을 잡지 못하고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잡념을 물리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잡념을 물리칠 수 있다면 기도는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잡념을 물리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 기도의 내용을 꽉 붙잡아야 한다
기도의 내용을 분명히 하여 꽉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초점이 흐려지면 기도의 목표가 분명치 못하기 때문에 기도의 힘이 실리지 못한다. 기도의 내용을 모두어 하나의 초점에 맞추어야 한다.
기도의 초점을 모두기 위해서는 기도의 내용을 잘 정리하여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기도의 내용을 정리하지 못하면 기도가 왔다 갔다 하여 횡설수설하게 된다. 마음 속에서 생각들을 잘 정리하지 못하면 하나의 사상에로 초점을 맞출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이는 강의하는 사람이 마음 속에는 아는 것이 많지만 그 생각 속에 있는 지식들을 잘 정리하지 못하고 강의를 할 때에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슨 소리인지 몰라 비판적인 반응을 나타내게 되는 것과 같다.
한번은 모 교수의 강의에 대하여 평을 들은 적이 있다. 지식이 있는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부정적이다.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생각 속에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마음 속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생각들을 잘 정리하여 하나의 분명한 사상에로 초점을 맞출 때에, 비로소 힘있는 언어로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기도 역시 기도의 내용이 일관성 있게 정리되어 하나의 촛점을 만들게 되면 기도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다. 마치 렌즈를 통하여 빛의 촛점을 맞추듯. 즉 기도의 내용을 하나의 촛점으로 모두어 꽉 붙잡고 확신있게 기도해야 한다.
② 중언 부언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할 때에 중언 부언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6:7). 본래 중언 부언이라는 말에는 원어로 두 가지 단어가 있다.
그 하나는 바톨로기아(βαττολογία)로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과다하게 하는 것(stammering on)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포루로기아(πολυλογία)로서 쓸 데 없는 말들을 많이 흘려내는 것(much-talk)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언사(말의 행동)는 다 같이 많은 말들을 동원하고 반복적으로 설명하여 하나님을 설득시키려는 행위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려는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인간의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해야 자기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이러한 중언 부언의 기도 소리는 성전 안에서 메아리칠 뿐,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것이다(Calvin).
예수께서 말씀하신 “중언 부언”이라는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6장 7절에 보면,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고 했다.
이 본문대로 보자면,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이방인과 같이 기도하지 말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할 때에 말을 많이 하여야 기도가 상달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첫째로, “이방인과 같이 기도하지 말라”는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씀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기도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들이 이방인들의 기도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방인들의 기도는 두 가지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맹목적으로 형식적인 기도문(주문)을 외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길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이방인과 같이 주문을 외우며 길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 시간이 길건 짧건 관계없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하는 기도임을 알아야 한다(유 20).
물론,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이 강하게 올 때까지 기도의 자세를 무시할 수 없다. 성령의 감동이 올 때까지 기도의 자세는 길건 짧건 관계없이 그 동기가 순수해야 하며, 전혀 의심하지 말고, 주님의 약속(요 14:14)에 의지하여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이방인들의 기도의 실례 중에 갈멜 산의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주문을 외우고, 자기들의 몸을 칼로 상하면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여러 시간 동안을 기도했으나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응답하시지 아니했던 것이다.
또 이러한 이방인들의 기도 중에, 티벳 불교에서는 기도문이 새겨진 회전식 기도 통(prayer-wheel)이 있다. 그들은 회전식 기도 바퀴 통을 돌리면서 거기에 새겨진 주문(기도문)대로 외우게 된다.
물론, 성경에도 예수님의 대 제사장적인 또는 중보의 기도와 같이 길게 하는 기도의 실례도 있지만(요 17장, 겟세마네의 철야기도), 대분분의 경우에 짧으면서도 결정적인 기도를 하는 때가 많다.
성경의 실례들로, 모세의 기도(출 32:32, 32), 솔로몬의 기도(왕상 3:6-9), 엘리야의 기도(왕상 18:36, 37), 히스기야의 기도(왕하 19:14-19), 야벳의 기도(대상 4:10), 아굴의 기도(전 30:7-9), 세리의 기도(눅 18:13), 강도의 기도(눅 23:42), 스데반의 기도(행 7:60), 바울의 기도(엡 3:14-19) 등 수없이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특별히 주님의 가르치신 주기도문은 대표적인 기도임을 알 수 있다.
(3) 잡념(雜念)을 물리쳐야 한다
기도할 때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잡념이다. 잡념 때문에 기도를 망치게 된다. 잡념 때문에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잡념 때문에 기도의 줄을 놓치고 횡설수설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줄을 잡지 못하고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잡념을 물리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잡념을 물리칠 수 있다면 기도는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잡념을 물리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① 기도의 내용을 꽉 붙잡아야 한다
기도의 내용을 분명히 하여 꽉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기도의 초점이 흐려지면 기도의 목표가 분명치 못하기 때문에 기도의 힘이 실리지 못한다. 기도의 내용을 모두어 하나의 초점에 맞추어야 한다.
기도의 초점을 모두기 위해서는 기도의 내용을 잘 정리하여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기도의 내용을 정리하지 못하면 기도가 왔다 갔다 하여 횡설수설하게 된다. 마음 속에서 생각들을 잘 정리하지 못하면 하나의 사상에로 초점을 맞출 수가 없는 것과 같다.
이는 강의하는 사람이 마음 속에는 아는 것이 많지만 그 생각 속에 있는 지식들을 잘 정리하지 못하고 강의를 할 때에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슨 소리인지 몰라 비판적인 반응을 나타내게 되는 것과 같다.
한번은 모 교수의 강의에 대하여 평을 들은 적이 있다. 지식이 있는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부정적이다. “저도 모르고 남도 모르는 강의를 한다”는 것이다. 생각 속에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마음 속에서 생성되는 수많은 생각들을 잘 정리하여 하나의 분명한 사상에로 초점을 맞출 때에, 비로소 힘있는 언어로 구사할 수 있게 된다. 기도 역시 기도의 내용이 일관성 있게 정리되어 하나의 촛점을 만들게 되면 기도의 목적을 달성시킬 수 있다. 마치 렌즈를 통하여 빛의 촛점을 맞추듯. 즉 기도의 내용을 하나의 촛점으로 모두어 꽉 붙잡고 확신있게 기도해야 한다.
② 중언 부언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기도할 때에 중언 부언하지 말라고 하셨다(마 6:7). 본래 중언 부언이라는 말에는 원어로 두 가지 단어가 있다.
그 하나는 바톨로기아(βαττολογία)로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과다하게 하는 것(stammering on)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포루로기아(πολυλογία)로서 쓸 데 없는 말들을 많이 흘려내는 것(much-talk)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언사(말의 행동)는 다 같이 많은 말들을 동원하고 반복적으로 설명하여 하나님을 설득시키려는 행위로,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려는 믿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하여금 인간의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해야 자기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이러한 중언 부언의 기도 소리는 성전 안에서 메아리칠 뿐,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것이다(Calvin).
예수께서 말씀하신 “중언 부언”이라는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성경 본문으로 돌아가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복음 6장 7절에 보면,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고 했다.
이 본문대로 보자면,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 하나는 이방인과 같이 기도하지 말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할 때에 말을 많이 하여야 기도가 상달되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첫째로, “이방인과 같이 기도하지 말라”는 뜻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씀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기도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들이 이방인들의 기도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뜻이다.
이방인들의 기도는 두 가지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하나는 맹목적으로 형식적인 기도문(주문)을 외우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길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이방인과 같이 주문을 외우며 길게 하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 시간이 길건 짧건 관계없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하는 기도임을 알아야 한다(유 20).
물론,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이 강하게 올 때까지 기도의 자세를 무시할 수 없다. 성령의 감동이 올 때까지 기도의 자세는 길건 짧건 관계없이 그 동기가 순수해야 하며, 전혀 의심하지 말고, 주님의 약속(요 14:14)에 의지하여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성경에 보면, 이방인들의 기도의 실례 중에 갈멜 산의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주문을 외우고, 자기들의 몸을 칼로 상하면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여러 시간 동안을 기도했으나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응답하시지 아니했던 것이다.
또 이러한 이방인들의 기도 중에, 티벳 불교에서는 기도문이 새겨진 회전식 기도 통(prayer-wheel)이 있다. 그들은 회전식 기도 바퀴 통을 돌리면서 거기에 새겨진 주문(기도문)대로 외우게 된다.
물론, 성경에도 예수님의 대 제사장적인 또는 중보의 기도와 같이 길게 하는 기도의 실례도 있지만(요 17장, 겟세마네의 철야기도), 대분분의 경우에 짧으면서도 결정적인 기도를 하는 때가 많다.
성경의 실례들로, 모세의 기도(출 32:32, 32), 솔로몬의 기도(왕상 3:6-9), 엘리야의 기도(왕상 18:36, 37), 히스기야의 기도(왕하 19:14-19), 야벳의 기도(대상 4:10), 아굴의 기도(전 30:7-9), 세리의 기도(눅 18:13), 강도의 기도(눅 23:42), 스데반의 기도(행 7:60), 바울의 기도(엡 3:14-19) 등 수없이 많은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특별히 주님의 가르치신 주기도문은 대표적인 기도임을 알 수 있다.
출처 : 행복†충전소
글쓴이 : 대명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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