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스크랩] 복 받은 오벧에돔 (삼하 6:6-11)

은이dii 2011. 11. 1. 08:49

복 받은 오벧에돔 (삼하 6:6-11)

 

이 시간에는 “복 받은 에벧에돔”이라는 제목으로 잠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기독교는 복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모시면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섬겨 복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은 일을 하면서도 복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행해야 할 이유가 그것입니다. 잘 알지 못하면 좋은 일을 한다면서도 복 받지 못하고 책망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약 세 사람을 보게 됩니다. 웃사, 다윗, 오벧에돔, 그런데 웃사는 복은커녕 법궤를 붙들다 죽었고, 다윗은 두려워 법궤조차 옮겨오지 못했고, 오벧에돔만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신앙의 기본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6절과 7절을 읽겠습니다. “저희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이 말씀 잘 아시죠?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과의 전쟁으로 빼앗겼던 법궤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궤는 70년간 기럇여아림의 제사장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러 예루살렘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왕권이 견고하게 되자 하나님의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서 시온의 장막으로 모셔 오기를 원했습니다. 법궤를 옮겨오는 날 수레에 싣고 향하던 중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갑자기 날뛰기를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궤도 수레에서 떨어지려고 합니다.


이 때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웃사에게 진노하여 법궤 옆에서 죽게 됩니다. 우리가 단순히 웃사의 행위를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너무하신 것처럼 생각되어집니다. 그러나 웃사의 처사는 신앙의 기본을 모르는 처사였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복 받을 수 없습니다.


웃사가 누굽니까? 제사장 아비나답의 아들입니다. 아비나답은 무려 70년 간 자기 집에 법궤를 모신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가 복 받았다는 소리도 없고 아들마저 화를 당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너무나 말씀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행하다가는 70년을 믿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민 4:5-15, 7:9을 보면 하나님의 궤는 반드시 레위인이 메어야 하며 레위인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궤를 수레에 실어서는 안 됩니다. 수레에 실은 것은 상식이 없는 블레셋 사람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6장을 보면 궤가 블레셋에서 돌아 왔을 때도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의 뚜껑을 열고 들어다보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70명이 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진노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위해, 혹은 교회를 위해 좋은 일할 때 항상 방법에 고민해야 합니다. 신앙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믿음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기도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싸우고 다투고 편 가르고 소송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갈5:14-15에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했습니다. 율법의 중심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하고 사랑 없이 율법만 적용하다가는 많은 사람 죽이고 피차 멸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도 그래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본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늘 드리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2. 잘못을 깨달아 고쳐야 복을 받습니다.


9-10절 말씀입니다.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치우쳐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모셔오는 일에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온 나라 백성들에게 대국민발표를 하고 3만 명의 행사 인원까지 동원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일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는 길에 웃사가 죽은 것입니다.


다윗은 이 일로 무척 화가 났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베레스웃사”라고 했는데 그 의미는 ‘웃사의 불이행’이라는 뜻입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웃사의 잘못으로 거국적인 행사를 이행하지 못하고 망쳐버렸다는 말입니다. 다윗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뜻도 될 수 있으니 위상이 한없이 추락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다윗은 두려웠습니다. 이 두려움은 신앙적인 경외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본능적인 두려움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접촉 불가한 위험물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혹시 나도 잘못하다가는 웃사와 같은 꼴을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그는 마음을 바꿔 여호와의 궤를 옮겨 오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웠으면 그랬을까요? 그럴 만도 합니다.


70년 전에도 벧세메스 사람들이 법궤를 들어다보다가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요. 얼마나 두려웠으면 70년이나 방치했겠습니까? 그런데 또 죽었으니 말입니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제사장이 죽었으니 할 말이 있습니까?


그러나 누구 잘못입니까? 하나님 잘못입니까? 사람 잘못입니까? 사람 잘못이 확실한데 다윗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으니 하나님을 의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못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 깨달았다면 회개하고 법궤를 모시고 복 받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잘못을 깨닫지 못하면 복이 지연됩니다. 왜 막혔는지, 왜 안 되는지, 왜 기쁨이 없는지, 왜 행복이 없는지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큰 은혜는 자기 막힌 문제를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고 회개해야 복이 옵니다.


약1:22-25을 보면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늘 성경 보면서 성령의 깨닫게 해주심을 사모하여 참된 복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목숨 바쳐 하나님을 사랑해야 복을 받습니다.


11절입니다. 다 같이 읽어볼까요?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오벧에돔이 여호와의 궤를 모시고 복을 받은 이야기입니다.


웃사의 가정은 아버지 아비나답 때부터 70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궤를 모셨음에도 복 받지 못했는데 오벧에돔의 가정은 석 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복이었을까요? 무자한 가정에 잉태의 복이었습니다.


역대상 26장을 보면 그 이후에도 복 받은 기록이 나옵니다. 8절에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 이 명이며”, 또 자손만 많은 것 아니고 큰 인물이 나왔습니다. 6절에 “그 아들 스마야도 두어 아들을 낳았으니 저희의 족속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


그리고 자손들 모두 능력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8절에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저희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니” 이처럼 오벧에돔은 하나님께로부터 자손의 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집안이 두루 형통하고 번성하는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웃사보다 더 말씀이 풍성했을까요? 그것도 나타나 있지 않으니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목숨 걸고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사장이 많았지만 다 모시지 않았습니다. 다윗 왕마저 두려워 나 몰라라 하는데 오벧에돔은 자기 집에 궤를 모셨습니다. 죽어도 좋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면,,,


복 받지 못해도 좋다. 아비나답은 70년간 모셨어도 복 받지 못했다. 그래도 좋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좋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하면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목숨 걸고 신앙생활하면 은혜 받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일한 우리의 믿음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 원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막12:30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출20:6에도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성품을 다해, 나아가 자기 목숨 사랑해서는 은혜 받지 못합니다.


막10:29에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10:29) 하셨습니다.


목숨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 복의 비결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하셨습니다.


오벧에돔의 교훈을 이렇게 적용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자원하여 맡아서 충성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다 십자가 지기 싫어할 때 내가 진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진 십자가도 복 주시는데 자원하면 왜 복 주시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은 몸소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무렇게나 믿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의 기본을 모르면 복 받지 못하고 행할수록 하나님의 진노만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자기 잘못을 깨닫고 오벧에돔처럼 목숨 바쳐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 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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