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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윤 집사는 오래도록 교회를 다닌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늘 무언가에 갈급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치 빈들에 형체만 가지고 있는 말라붙은 풀 한 포기와도 같이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 이런 냉냉함을 달래기 위해 윤 집사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삶의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까?” 마음 깊은 한 구석에서부터 타올라 오는 갈증은 어느 것으로도 해갈될 것 같지가 않았다. 교회를 나가도 매주 반복되어지는 예배의 연속으로 밖에는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더해 주지 못했다. 그는 이미 갈증을 해갈하고자 하는 강구책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담배를 피우기도 하였다. 그래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아 유흥업소에 가서 자신을 잊을 정도로 흐느끼며 몸을 흔들어 댔다. 윤 집사의 이런 반항이 섞인 방황은 그를 더욱더 영혼의 갈증의 구렁텅이로 빠뜨려 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있어서의 갈증을 느끼는 문제는 세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갈증은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현대병이다. 영혼의 갈증을 해갈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밖에 없다. 영혼을 적셔 줄 성령의 단비를 받는 일이다. 오늘도 우리들 마음의 대지에는 성령의 단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닫아 물구멍을 막아 버렸기에 이것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하고 달려가 보지만 늘 우리는 속고만다. 당신은 당신의 영적인 갈증을 성령의 단비로 해갈하고 있습니까?
[눅 1:15-16]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신령한 성도 고전 2:13 - 3:1
예수를 처음 믿고 따랐던 자들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에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또는 예수쟁이라는 뜻입니다. 그 후에는 믿는 자들끼리 서로 사랑으로 지낼 때 형제라고 불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고 성령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무리들을 성도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4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히 성결한 자, 거룩한 사람이라는 견지에서 성도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믿음이 있다는 견지에서 신자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서로서로 사랑하는 무리라는 견지에서 형제라고 이름 붙여졌고, 예수를 배워서 지식이 있다는 견지에서 제자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성도요, 신자요, 형제요, 제자인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3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14절과 15절, 그리고 3장 1절에 있습니다.
첫째, 14절 서두에 육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육에 속한 사람은 원문으로 [프쉬키코스] 한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프쉬키코스]란 말은 [프쉬케]즉 '혼' 이라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동물은 육체가 있는 동시에 [프쉬케]가 있습니다. 각혼, 생각하고 깨닫는 혼이 있습니다. 이것은 개도, 돼지도, 그리고 어떤 동물도 다 있습니다. [프쉬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동물적인 생명을 말합니다. 먹 고 싶고, 성적인 본능이 있는데 이 세상에는 본능적인 육체적인 삶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교회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이라든가, 하나님이라든가, 예배라든가 은혜라든가 이런 것을 조금도 이해를 못하고 오히려 비웃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먹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이성적인 욕구 충족으로 만족합니다. 그리고 기쁜 축제나 좋아합니다.
두 번째, 15절에 신령한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령한 자는 원문에 [프뉴마티코이] 한 사람입니다. 이[프뉴마티코이]에서 [프뉴마]라는 말은 원문에 '성령'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민감합니다. 그래서 성령에 대해서 순종을 잘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 이 사람은 믿지 않는 세계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자는 믿는 사람인데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은 다 신령한 자가 되어 지기를 축원합니다.
신령한 자는 성령에 속한 자, 성령의 뜻대로 사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부르는 이름 가운데 교인을 대개 교인이라고 말하고 신자라고도 말하고 성도라고도 말합니다. 이 교인 가운데는 1년에 1번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교인이 많습니다. 만명 가량 됩니다. 그러나 교인 가운데는 신자가 있고 그 신자 가운데는 성도가 있습니다. 교인보다 더 좋은 것이 신자인데, 신자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옵니다. 구원도 받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좋은 이름이 성도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성도라고 하는 이름은 참 귀한 이름입니다. 제가 외국에 여행을 하면서 보면 어떤 사람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정한 곳도 있 습니다. 브라질 같은데는 제일 큰 도시를 샹 파울로 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의 이름에 샹이라고 하는 성도를 붙여 성도(SAINT) 바울이라 부릅니다. 또 아주 유명한 사람에게는 동상을 세워 놓고 SAINT라는 말을 다 적어 놓았습니다. SAINT 라는 말이 성도라는 말입니다. 이 성도라는 말은 아무나 가지는 말이 아닌데 오늘날은 굉장히 격하되어 있습니다.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고 권사도 아니고, 집사도 아닌 사람을 그냥 부르기 좋게 성도라고 부르는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성도라는 이름이 제일 고귀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고귀한 이름 성도라는 이름을 가지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참 성도다운 성도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본문 3장 1절에 육신에 속한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라는 말은 원문에 [사르키노이]라고 했습니다. [사르키노이]라는 말은 육신으로 된 자입니다. 이 말을 바울사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어린아이들이라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밥이 아닌 젖으로 먹는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성도와 육에 속한 사람 사이에 육신에 속한 신자가 있는데,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입니다. 분명히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에 잘 다닙니다. 하나님이 계신 줄 알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시기도 하고 분쟁도 하고 절대 남이 잘되는 것을 배가 아파서 못 봅니다. 이런 자는 어린아이와 같은 신자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는 이런 분들도 없지 않아 있을 줄 압니다. 바라기는 그 분들이 다 장성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들은 조금만 뭐 하면 토라집니다. 조금만 하면 화를 냅니다. 그들은 다루기가 굉장히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많이 오해를 하고 토라지고 그렇습니다. 뭘 먹이는 것도 아주 조심스러워 젖으로 먹여야 합니다. 떠 먹여 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먹습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결해 갑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 앞에 비난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비난의 화살을 늘 받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육신에 속한 자,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 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인데,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가 되지 마시고 장성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라는 말은 영어로 SAINT 라고도 합니다. 원문에는 [하기오이] 그 뜻은 순수하다, 깨끗하다, 거룩하다. 성결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쳐진 물건을 신성 혹은 성결하다고 합니다. 똑같은 종이이지만 하나님 앞에 바쳐졌을 때는 거룩합니다. 신성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여러 사람들 가운데서 특별히 뽑힘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바쳐진 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바쳐진 몸, 그러기 까닭에 아주 깨끗합니다. 순수합니다. 거룩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을 성도들이라 이렇게 말하는데 개인적으로 말하면 성자님들입니다. 예수님 까닭에 성자님들이 되었습니다.
이 성도들의 특색은 아주 친절합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탁월합니다. 자비스럽습니다. 은혜 스럽습니다. 경건합니다. 이웃끼리 사랑을 주고받고 이웃끼리 가깝고 그래서 성도를 다른 말로 하면 존경하는 자, 존경할 가치가 있는 사람, 거룩한 사람, 하나님 앞에 바쳐진 사람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거룩해져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들이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약에서 성도를 [하기오스]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르게 구별되어 바쳐졌다는 말입니다. 이 성경책은 보통 책과 다른 책입니다. 그리고 성전을 [하기오스]라고 합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보통 집과 다른 집입니다. 이 집의 재료가 어떤 것인가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주 다른, 구별되어진 집인 것입니다. 외국에 가보면 어떤 성전은 반바지나, 맨발로는 못들어오게 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성전은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합니다. 보통 장소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일도 [하기오스]라고 하는데 보통 날과 다른날 곧 '성일' 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안식일을 지킵니다. 이스라엘에 갔더니 마침 금요일 6시가 넘었습니다. 금요일 6시부터 토요일 6시까지를 안식일로 지켜 비행기도 뜨지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자동차도 운전할 수 없습니다. 안식일에는 사사롭게 일을 못합니다. 심지어 글씨 쓰는 것도 일이라고 하여 쓰지 않습니다. TV를 켜는 것도 안 됩니다. 안식일은 보통 날과 다릅니다. 깨끗하고 그날을 지킵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의 성일은 주일인데,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 날은 보통 날과 다릅니다. 이날은 함부로 다른 날과 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날은 거룩한 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날, 이것으로 여러분이 목표를 삼고 이 주일을 성수하시기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를 [하기오스]라고 합니다. 다른 보통 사람과는 다릅니다. 여러분이 믿지 않을 때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 생각하지만 보통 사람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모든 것이 다른데 근본적으로 뿌리부터 다릅니다. 존재 목적도 다릅니다. 존재 목적도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태어나서 그저 살지만 성도는 존재의 목적이 달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되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주의 것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것이기에 주를 우해 살아야 합니다.
고전 10장 31절에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우리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이 먹어도 주를 위해 먹어야 합니다. 마셔도 주를 위해 마셔야 합니다. 돈을 벌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벌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돈버는 목적이 믿지 않는 사람과 다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즐기려고 돈을 법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돈을 법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잘되라고 자녀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녀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모든 존재의 가치가 다르고 또 생의 의미가 다르며 우리 운명도 다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죽으면 운명이 끝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은 영원히 천국에 들림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행복관도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과 우리 믿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이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적 만족이나 즐기는 것 그리고 축제같은 것으로 기분이 좋고 생의 의미를 찾지만 우리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언제 저 하나님 나라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가 성령님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아야 행복합니다.예수 안에서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된 존재라는 말입니다. 구별해 놓았습니다.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구별해 놓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룬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안에 있다는 말은 성령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성령 안에 있고 나는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내 안에 있고 나와 더불어 예수와 일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령이 늘 우리 안에 내주하여 있도록 하려면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충만하려면 늘 깨어 기도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시종여일하게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 와서만 아니라 집에 가서도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도 행동도 생활도 성도답게 우리를 볼 때 우리가 저들에게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빛 노릇하고 세상에 소금노릇하고 그리스도의 편지 노릇하는 그래서 우리를 볼 때 그리스도인이다. 성도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도록 신령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 지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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