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한 군중은 그분을 유대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다. 이것을 알아차린 예수님은 군중을 해산시키고, 혼자 조용히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산으로 가고 싶었으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허락하시지 않고 제자들을 억지로 배에 태워 먼저 맞은편 기슭으로 보내셨다. 그런데 배가 육지를 떠나 얼마 가지 않았을 때 갈릴리 바다 특유의 돌풍이 불어 닥쳤다. 그것은 강한 회오리 바람이었으므로, 원래 어부였던 제자들까지도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배는 금새 성난 파도가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래서 예수님과 함께 남고 싶다고 말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어째서 이 돌풍을 미리 알지 못했을까?” “이제 끝장이야. 예수님은 산 위에 계시고, 우리는 배 안에 있어.” “우리는 예수님께 버림을 받은거야.” 제자들의 얼굴에는 절망과 좌절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을 아시고, 제자들을 억지로 배에 타게 하셨던 것이다. “재촉하사”라는 낱말은 “억지요”라는 뜻이다. 즉 제자들의 의사에 어긋나게 억지로 배에 태웠는데 여기에는 목적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망망한 바다에서 예수님이야말로 살아 계신 위대한 구주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기 위해서였다. 당신도 이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망망한 대해 속에서 그리스도만이 위대한 구주임을 체험하고, 그 역풍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당신에게도 오늘 제자들이 만났던 인생의 풍랑이 있다면 주님을 만나실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욥 36:6
아브라함의 반복된 실수 창세기 20 : 1-18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롯이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구원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위한 중보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서 그로 말미암아 롯은 불과 유황의 심판에서 구출 되었습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이 오늘 본문가운데 반복된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에서 기근으로 인하여 애굽에 내려갔다가 자신의 아내인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0장에서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인 은혜로 아브라함의 아내를 보호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방해하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2장의 사건과 다른 것은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으며 아브라함이 아비멜렉 왕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와는 아브라함의 신앙적인 성숙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옮겨 갔던 이유는 정당합니다. 당시 아브라함은 목축을 하였고 좋은 풀을 얻기 위하여 또는 물을 얻기 위하여 남방으로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머물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갔을 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두 번째 자신의 아내를 빼았겼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는 두 번씩이나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아브라함도 연약한 한 인간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도 철저히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누구든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지 못하면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에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큰 민족을 이뤄줄 것이며, 이름을 창대케 해 줄 것이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철저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지 못했기에 두려움에 빠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한 가지 의문을 풀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까? 한국의 유명한 ㅈ목사는 이 본문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실수도 선으로 바꿔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고 아멘을 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아야만 이 본문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 이것이 본문을 푸는 열쇠입니다.
갈3: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내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과의 약속 안에는 역사 속에 등장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예고되어 있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막으시고 지켜주시는 이유입니다. 무조건 막무가내로 우리의 신앙에 적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와 무관한 말씀이 아니 라 오늘 우리를 아니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아야하고 그것이 우리의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8장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설교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너희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조상과 맺은 약속 때문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조상과 맺은 약속 때문에 이스라엘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애굽의 왕 바로가 이스라엘의 남자아이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애굽의 산파가 모세를 죽이지 않고 살려둡니다. 그리고 모세를 강에 버리고 그 모세를 바로왕의 공주가 건져서 아들을 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건지신 것은 개인적인 은혜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오늘도 사탄은 하나님의 계획을 어떻게 해서든지 방해하려고 합니다. 모세를 죽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것은 한 개인 모세의 삶을 통하여 미래에 있게 될 주님의 탄생을 사탄이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사탄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도 헤롯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방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도 사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것은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구원의 계획을 믿고 담대히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1년 3월 23일 (수) - 플라톤의 감사 (0) | 2011.04.21 |
---|---|
[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1년 3월 24일 (목) - 모든 일이 힘으로 될 수야 없는 법 (0) | 2011.04.21 |
[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1년 3월 26일 (토) - 검은 대륙의 개척자 (0) | 2011.04.21 |
[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1년 3월 28일 (월) - 개척 전도자의 마음 (0) | 2011.04.21 |
[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1년 3월 30일 (수) - 미개척 분야를 찾으라 (0) | 2011.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