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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리빙스톤이라면 누구나 먼저 아프리카를 연상하게 된다. 그만큼 그의 생애는 아프리카 대륙과 밀착되어 있다. 그의 이름은 아프리카의 밀림 속에 깊숙이 아로 새겨져 있으며, 아프리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리빙스톤은 무지와 가난과 질병에 허덕이는 버림받은 검은 대륙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34년 동안에 걸쳐 복음의 씨를 뿌린 신앙의 개척자이다. 그는 2만 9천 마일을 여행했으며, 그 험한 칼라하리 사막을 세 번이나 횡단하고 누가미호, 잠베지강,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했다. 그는 백인으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횡단했고 내륙에 있는 니아사호, 탕가니야카호, 방웨을호 등을 발견하였으며, 7년 동안이나 나일강의 근원을 찾기 위해 탐험을 계속했다. 우리는 리빙스톤을 유명한 탐험가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는 탐험가라기보다는 19세기 최대의 선교사로서 검은 대륙에 하늘의 빛을 심어준 광명의 사도였다. 그는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병자를 고쳐주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검은 원주민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두터운 우정을 맺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검은 대륙의 밀림 속까지 심기 위해서는 가족과의 생이별도 불사했고 비인도적인 백인 노예상인들에게 여지없이 날카로운 힐책을 가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고전 1:18]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들 누가복음 9:57-62 /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왜 그녀와 결혼하려느냐는 물음에 남자는 "그녀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설렁탕 집 가운데 A 라는 설렁탕 집만을 찾아 가는 사람에게 왜 그 집만을 고집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집 설렁탕이 마음에 들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허구 많은 미장원을 제쳐두고 강남의 B 미장원만을 찾아가는 여인에게 왜 그 곳만 찾아 가느냐고 물었더니 머리 손질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 결혼하고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아가 물건을 구입하고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찾아가 음식을 사 먹습니다. 동네마다 교회가 들어서 있습니다만 자기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오고 찾아가는 것도 그런 이치와 동일합니다.
사도행전 13:22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다윗을 이스라엘의 2대왕으로 세우신 이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3:14을 보면 사울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했기 때문에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마음에 들고 마음에 맞는 사람을 뽑으시고 그들에게 일을 맞기시는 것입니다. 본문 62절을 보면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부정법을 바꾸면 긍정법이 됩니다. 합당치 아니한 일들을 고치면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맞길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어디든지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59절을 보면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주변을 서성거리며 맴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님은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나로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 장례식을 치루곤 했습니다. 이유는 시체가 부패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 주님은 다시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죽은 사람이 그날 장례식을 치루지 않고 예수님 주변을 서성거리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주경가들은 그것은 그의 핑계였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은 따르는 사람, 좇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5:11을 보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고 했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 합당한 사람입니다. 부부나 가족이 함께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남편이나 아내나 부모나 자식이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 마져 예수를 버리거나 떠나는 것은 파멸의 원인이 됩니다.
함께 믿고 따라갈 형편이 아니라면 나만이라도 믿고 따라가야 합니다. 남편이 술 마시고 마약하고 주색에 빠져 산다고 해서 아내도 따라가면 안됩니다. 부모가 방종한 생활을 한다고 해서 자식들도 따라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배우고 따르고 실천해야 합니다. 나쁜 것은 본뜨거나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구 소련의 심리학자였던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가 발견한 이론 가운데 (조건반사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종을 치고 난 직후 개에게 밥을 주는 일을 얼마 동안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밥은 주지 않은 채 종만 쳤더니 종소리만 듣고도 개가 침을 흘렸습니다. 여기서 종소리는 조건이고 개가 침을 흘리는 것은 반사가 된다는 것이 파블로프의 이론인 것입니다.
늘 순종하고 따라가는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순종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심령이 즐거워지고 가슴이 뛰고 영혼이 약동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불순종을 배우고 거역으로 자신을 훈련한 사람은 순종하라는 말만 들어도 신트림이 나고 역겹고 메스꺼운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 조건반사인 셈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입니다. 백성은 왕의 명령과 통치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고 왕은 백성을 정의와 공평과 사랑으로 다스릴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22을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3절에서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불순종은 형성된 습관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총회장 재임 때 일이 생각납니다. 총회장이 주재하는 국내외의 크고 작은 회의들은 그 수를 다 셀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 총대들이 모여 진행하는 회의는 총회가 개최되고 있는 4-~5일 기간 입니다. 사회를 하다 보면 자기자리에 앉지도 않고 사사건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수를 대충 세어 보니까 15명 정도였습니다.
제가 재임기간 총대수가 1900명이었습니다. 1500명은 전국 노회가 선임해 보낸 목사와 장로들입니다. 그들은 박사, 의사, 교수, 총장, 회장, 사장 등 다양한 직업과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조용히 앉아 회의 진행을 지켜 보다가 가부를 물으면 자기의 의사표시를 합니다. 그런데 15명은 마치 황야의 무법자처럼 안건마다 나서고 소리지르고 이론을 제기하고 시간을 끕니다. 그들 생각엔 내가 여기서 가만 앉아 있으면 이 안건처리가 잘못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황당한 착각입니다. 그들이 떠들지 않고 나서지 않고 시비 걸지 않아야 회의가 빨리 끝납니다.
미국 존 홉킨즈 대학의 연구팀들은 수컷생쥐 실험을 통해 일산화 질소 생성 유전자가 없는 수컷 생쥐가 암컷 생쥐를 강간하는가 하면 폭력을 행사하고 공격을 일삼는 결과를 발견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지만 사람도 유전자의 결함에 의해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뭔가 중요한 것이 모자랄 때, 그리고 물려받아선 안될 것을 물려 받았을 때 사람이건 짐승이건 공격적이고 폭력적이고 반사회적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따라가는 훈련을 힘씁시다. 예수 따라가야 영생이 있고 살 길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예수 바라보고 예수 따라 갑시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60절을 보면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1을 보면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4:23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도 전파했고 주님도 전파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7을 보면 열두제자를 선택하시고 보내시며 "가라, 가면서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를 뽑으시고 훈련하시는 이유도,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의 사람,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을 가장 원하시는가, 무엇을 가장 기뻐하시는가를 빨리 이해하고 발견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2:2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했고 에베소 5:10에서는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주님처럼 가서 전파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를 전하고 주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어느 사람이 만든 이야기...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선발하시기 위해 올림픽 경기를 열어 뽑기로 하셨습니다. 경향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리며 경기에 참가 했습니다.
첫번째 경기는 기도대회 였습니다. 주여! 를 외치는 사람, 할렐루야! 를 외치는 사람, 주여 믿습니다! 를 외쳐대는 사람, 어떤 사람은 철야기도를, 금식기도를 내세우며 소리치는 사람들로 경기장은 금새 열기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뽑을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목숨 걸고 마음을 바쳐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경기는 예배 대회였습니다. 저마다 열린 예배, 음악예배, 헌신예배, 피켓을 들고 화려한 가운과 악기들은 동원하고 수백 명 성가대까지 동원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형식일 뿐 피와 땀과 영혼을 바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뽑히는 선수도 없었습니다.
세 번째 경기는 교육대회 였습니다. 개발한 교육프로그램, 비디오 자료, 소 그룹, 연구수업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나왔지만 생명을 사랑하고 구원하겠다는 열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뽑을만한 선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올림픽은 끝났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주님은 바닷가로 나가 머리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 바닷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는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빛나고 팔은 힘이 있고 그들의 마음과 정성은 그물과 함께 바다에 쏠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다는 이야기...
뜻하는 바 큰 이야기 입니다. 기도도, 예배도, 교육도 중요합니다. 성가대도, 오케스트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일을 해내는 내 혼이 살아 움직여야 합니다. 건성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니스트는 무대에 설 수가 없습니다. 건성으로 손만 흔드는 지휘자는 지휘자 자격이 없습니다. 소리만 내는 성가대나 오케스트라는 소리꾼에 불과 합니다.
마지못해 하는 기도, 마지못해 가르치는 교사, 마지못해 움직이는 봉사는 하나님 마음에 들지 못합니다. 예수를 전파합시다. 예수를 이야기 합시다. 예수를 다른 사람에게 말합시다.
3. 뒤돌아 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62절을 보면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밭을 가는 사람이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 보면 밭이랑이 굽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되는 일이 없고 앞으로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과거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날이면 날마다 옛날을 되돌아 보고 뒤 돌아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현실안주의 사람입니다. 이대로가 좋다. 여기가 좋다. 지금이 좋다면서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향상도 발전도 없습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가 "여기서 삽시다"라고 했을 때 주님은 "내려가자"고 하셨습니다. 즉 앞으로 가자고 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미래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앞을 바라보는 사람, 위를 바라보는 사람, 부딫쳐 오는 시련과 고통과 실패가 있을지라도 그것들을 박차고 일어서 가는 사람들 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가라 가서 전파하라"고 보내시면서 자신도 십자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 가셨습니다.
뒤 돌아 보지 맙시다. 앞을 바라보고 걸어 갑시다.
그 사람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너는 내 사람이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 나와 함께 가지꾸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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