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1년 4월 2일 (토) - 접목된 가시나무

은이dii 2011. 4. 21. 16:38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황무지에 한 그루의 가시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곳에 삽을 손에 든 정원사가 나타났다.

정원사가 가시나무 주위를 파고 있을 때 가시나무는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어째서 이런 괜한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무 쓸모 없는 가시나무라는 걸 이 사람은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정원사는 그 가시나무를 정원에 갖고 가서 장미 사이에 심었다. 가시나무는 다시 생각했다.

나 같은 가시나무를 이런 아름다운 장미 사이에 심다니, 이 사람 모자라도 되게 모자라는군.”

그러나 정원사는 예리한 나이프로 가시를 자르고 그곳에 장미를 접목시켰다.

이윽고 여름이 되니 그 가시나무에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 정원사가 말했다.

너의 아름다운 꽃은 네 자신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의롭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신 덕분이다 

 



접붙임이란 것은 더 좋은 종자를 만들기 위해 실행하는 것이다.

예수께 접 붙임을 당한 당신은 예수의 마음이, 예수의 심장이 주어져 있습니까?

 

[롬 11:17-18]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 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제가 젊은 나이 시절 영적인 고뇌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저를 목사로 세워주신 저의 인생에 영적 은사인 분이 계십니다. 만일 제가 그 분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하나님 앞에 헌신의 자리로 나아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게 되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 생의 방향이 바뀔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꾸준히 기도해야 됩니다. 이 만남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시기 때문에 내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정말 나에게 절실히 필요하고 가장 긴요한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바울도 그의 생애 가운데 만남을 가졌던 소중한 사람들을 오늘 본문에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바울과 그들의 만남은 성경에 기록할만큼 아주 중요한 것들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왜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봅시다.

 

첫째로 3절에서 바울은 문안의 첫 번째 대상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말하는데, 첫 번째 대상으로 말할만큼 그들의 헌신은 대단했습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칠 무렵 AD57년에 아가야 고린도에서 사역을 정리하면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생각하면서 복음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로마서를 쓰면서 복음을 위해 일했던 많은 사람들중 첫 번째로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했던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에게 있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문안의 첫 번쨰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우리는 그냥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사도바울의 첫 번째 문안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큰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들은 같이 사역하면서 남다른 특별한 헌신을 했기 때문에 문안의 첫 대상이 된 것입니다.

만일 사도바울이 지금 한영교회에 와서 문안한다면 여러분은 바울의 몇 번째 문안 대상이 될 수 있습니까? 아니면 바울의 문안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복음의 헌신이 특출해서 모두다 문안대상에 포함되시기를 더 나아가 문안의 첫 대상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가 개척교회를 하면서 만일 사도바울이 각 개척교회에 문안한다면 제가 목회하는 교회가 문안의 첫 대상에 포함되는, 은혜롭고 놀라운 복음을 향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그리스도의 놀라운 능력으로 말미암아 누룩처럼 번져서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역사가 있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습니다. 예수사랑교회가 하나님 마음을 흥분시킬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둘째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3).

아굴라는 본도 출신으로 오순절 날에 참석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을 때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목격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로마에 건너와서 브리스가와 함께 사역하다가 글라디오황제의 칙령으로 추방되어 고린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로마에서 추방당했던 이유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유대인들과 그렇지 않은 유대인들 사이에 수 많은 갈등이 생겨 모든 유대인들은 나가라고 명령되었던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복음 전하는 자로서 복음에 붙잡힌 사람이고 예수안에 거했던 사람입니다.

인격적인 주인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매일매일 한순간을 그분과 교제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삶의 실제가 있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를 믿는다고 하면서 주가 함꼐하는 삶의 현장이 없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바울은 갈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여러분 안에 살아있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십니까? 그리고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기 때문에 나의 모든 생활의 능력 가운데서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삶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주님과 매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5:4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가 내 안에 거하는 표적이 있는데 그것은 과실을 맺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중 하나는 성령의 열매인 성품의 열매로 예수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은 성품이 옛 것에서 벗어나 변화되어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사랑이 부족하여 사람을 미워하며 용서할 수 없었는데 예수 안에 거하면 거할수록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의 주인 되시는 구주께서 내게 힘과 능력주시는 것을 깨닫고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기쁘고 좋아서, 아직 놀라우신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솟아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열매가 없다면 주님과의 관계에서 적신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분들은 옛날에 주님과 가졌던 첫사랑을 회복하십시오. 주님과 만남의 담이 무너졌다면 그 담을 수축하기 위해 주님의 은혜로운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번제단 앞에 동물을 잡아서 드리듯이 우리 자신의 욕망과 하나님을 반대하는 의지들을 잡아서 결단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와의 자비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전심으로 주님을 찾으면 주님께서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9:13). 우리들의 삶속에 주님과 만나는 구체적인 현장이 없다면 주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붙잡아 주시기를 기도하는 결단과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로 그들이 바울의 동역자였기 때문입니다(3).

동역자란 같은 삶의 비젼을 가지고 서로 도우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고린도에 온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갑자기 바울의 방문을 받게 됩니다(18:2후반부). 사도바울이 어떻게 그들을 알고 찾아 갔을까요? 바울은 그들이 고린도에 왔을 때도 복음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을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 당시 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는 혼자였기 때문에 같이 복음사역을 할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18:5). 그리고 고린도는 무역도시로서 악과 부도덕이 섞여 영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부담감을 갖고 있어 고전2:3에서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여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내면의 심정을 고백하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주의 능력과 기적이 일어났던 바울도 때로는 영적으로 힘들 때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의 내면세계의 힘든 것을 정확히 아신 주님께서 복음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로마에서 고린도로 파송하신 것입니다.

외부적인 환경으로 보면 글라우디황제의 칙령으로 로마에서 쫓겨난 것이지만 영적으로 하나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히 바울을 돕기위한 손길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우시고 정확하시고 사도바울을 깊이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소식을 듣고 찾아가서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 것들과 앞으로 복음 전할 것에 대해 의논하고 함께 기도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의 종 사도바울을 돕는 동역자였습니다.

여러분도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복음을 위해 수고하시는 귀한 종에게 큰 힘과 은혜를 나눌 수 있는 동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목숨을 위해,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어놓을 정도로 헌신했기 때문입니다(4).

여기서 목숨이란 내면세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바울의 내면세계를 위해 자신들의 목이라도 내어놓겠다는 헌신을 말합니다.

그들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이 연약할 때 바울의 내면세계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업이 같으므로 같이 살면서 서로 도와주고 동역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바울의 필요를 채워주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16개월동안 사역을 끝내고 떠날 때 그들은 함께 에베소로 갔습니다(18:18) 그들은 인간의 정에 억매이지 않고 같이 할 때와 헤어질 떄를 알고 행동하였습니다.

18:24-28에 보면 그들은 에베소에 남아서, 알렉산드리아 출신 아볼로가 성경에 능하여 주의 도를 가르치는데 단지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어,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 말씀을 더 깊이 가르쳐 양육했고 아볼로가 아가야로 가기를 원하자 그를 파송하여 복음 전하는데 도와주었습니다. 아볼로는 아가야에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은혜를 끼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에베소에 있어 글라디오황제가 죽자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자신의 가정을 통해 주의 복음 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5). 그러나 네로황제의 핍박으로 다시 에베소에 돌아와 디모데와 같이 사역했습니다. 딤전4:19은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을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사역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처럼 어떻게 하면 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개척교회 목사로서 앞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처럼 어떤 환경에서든지 홀로 주님과 교제하면서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받아 주의 일을 열심히 하는 영적인 전사들을 양육하는데 신명을 바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은 영적전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간절한 바램과 주님이 나를 사용해 주시기를 바라는 소원이 기도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장차 받을 영광은 주님이 재림할 때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고귀하고 가치있는 삶이겠습니까? 하나님앞에 갔을 떄 내어놓을 것은 우리의 지위와 명예가 아니라 전도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어,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재림의 사건들을 전하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출처 : 주님의 시선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