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번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학자였고 또한 교수였습니다. 그는 수 많은 책으로 가득한 서재에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인생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는 이 해답을 찾기 위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연구를 해보아도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은 이 유식한 학자에게 해답을 줄 수 있습니까? 이 학자는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쇼펜 하우어 입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간단 말인가?” 그는 견디다 못해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그의 머리 속은 온통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라는 의문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는 번민한 나머지 지나가던 사람과 그만 이마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대낮에 길도 모르나?” “예! 맞습니다. 길을 몰라서 그럽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건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성경은 이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갈 곳을 분명히 알고 가고 있습니까?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는 속담처럼 목적지를 향하는 당신의 발길은 술 취한 사람인 양 비틀대고
있지는 않은가?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2. 마산시민교회가 주님의 전도전략을 따라 제자삼는 사역을 통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육체에 갇힌 인생 (본문:시65:2)
인간은 야누스처럼 양면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천사의 마음과 야수의 본성, 무한한 희망과 더불어 육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계와 상대성을 지니고 있는 육적인 존재를 극복하고자 인간들은 철학을 연구하고 종교에 의존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육적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과제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로 우리의 육신적 한계와 그것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전3:20,21)
1)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감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지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몸은 광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수분과 약간의 석회, 인, 탄산, 염분, 철분, 유황, 불소, 마그네슘 등, 이것들을 물질적 가치로 환산하면 쌀 한 가마 값도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물질로만 따지면 우리 신체의 가치는 보잘 것이 없습니다. 게다가 물질은 언젠가는 그 수명이 다하기 마련입니다. 원래 성경의 '흙'은 '티끌'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창18:27;전12:7). 물질로 된 우리 몸은 노쇠하고 후패해져 언젠가는 필시 그 수명이 다하여 티끌로 허무하게 돌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제한성을 지닌 몸을 입고 사는 우리는 그 육체의 힘과 미를 절대적인 것으로 의지하거나 자랑할 수 없습니다. 육신의 제한성을 통해 우리 인간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겸허해져야 합니다.
2)육체를 존귀하게 여겨야 함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육체를 비천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육체도 하나님의 귀하신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육체의 조직과 구성에는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손길이 배어 있습니다. 수족과 근육 조직, 뇌 조직, 신경조직 및 순환 조직 등 인류는 아직도 우주와 죽음과 더불어 인간의 몸에 대한 신비를 규명치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우리 정신의 집이요 도구요 표상입니다. 어떤 이는 이 세상에 가장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발명품은 '인간의 몸'이라고 말했고 몸은 인간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의 '최상의 상'이라고 말한 철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육체를 악하고 비천한 것으로 여기는 극단적 인식을 피해야 합니다. 성도의 육체는 성령의 전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수단이요 훗날에는 하나님 나라에서 거룩하게 부활, 변화될 영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육체의 연약성을 지닌 존재(시78:38,39)
1)환경에 약함 동식물들은 보편적으로 환경에 대해 놀라운 적응력, 자생력, 자정력, 그리고 면역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육체도 그와 같은 능력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야생 동식물의 능력보다는 현저하게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야외를 다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루도 못 되어 상처와 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마게도냐의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를 정복한 후 아프리카 정벌을 구상하는 도중 기르던 애완 원숭이와 장난하다 손을 물려 하루만에 죽었다고 합니다. 조그만 동식물의 독이나 바이러스, 약간의 충격에도 쉽게 상하는 것이 인간의 육체이며, 이로 인해 허무한 삶을 보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육체를 '풀의 꽃', '질그릇', '안개' 등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2)정신으로 연약성을 극복할 수 있음 그렇다면 육신의 한계와 연약성을 극복할 길은 없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극복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육체를 선용하여 아름답고 영원한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정신과 의지입니다. 얼마 전 시골 목회만 몇 십 년 하시고 은퇴하신 노목사님 부부를 만났는데 그 사모님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손이 시골 농부의 손처럼 갈퀴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손처럼 아름답고 귀한 손은 없을 것입니다. 그 손이 상한 만큼 섬기던 교회의 성도들의 영혼이 아름답게 변화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우리 주변에는 그 육체를 선용하여 아름답고 풍성한 삶의 열매를 거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육체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과 '의의 병기'로 드리라고 권합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제물과 진리와 의의 병기로 우리의 육체를 선용할 때 우리는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승리자들이 될 것이요, 인간만이 느끼고 얻을 수 있는 존재의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3. 죄의 보편성을 지닌 존재(롬7:17,18)
1)죄의 욕구를 지니고 있음 우리 인간에게 가장 큰 슬픔과 문제를 안겨 주는 것은 육체에 깃든 죄성일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진리를 숭상하되 육신의 욕구는 죄와 불의를 탐하니 이처럼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롬7:25). 또한 이 죄에 대한 욕구는, 어느 특별한 부류, 계층, 인종만이 아니라 다윗과 같은 성군이나 유다와 같은 소인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존재함 불의와 죄인줄 알면서도 그것을 탐하고 행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2)성령을 따라 살아야 함 그러므로 성경은 육체의 죄된 욕구를 따라 행치 말고 성령을 따라 행할 것을 권합니다(갈5:17;갈6:8).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 그 진리에 순종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생활을 뜻합니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인간 육체의 한계성과 연약성 및 죄성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인한 결과임을 성경은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영원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배신한 인류의 삶은 물질처럼 무가치하고 허망해지며, 불의의 종살이를 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의 육체가 증명해 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살 때에만 육체로 인한 삶의 한계를 온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인간은 육신적 한계를 지닌 존재이나 하나님은 그것을 신앙과 그 정신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몸을 주님과 그 진리의 거룩한 제물과 병기로 드리오니 받으시고 주님의 도굴 삼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