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기도의 올바른 이해
강병국 목사
하나님께서는 천연계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고 계신다.
또한 성경은 성령께서 항상 우리의 마음 속에 역사하고 계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에 있어서 그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우리도 하나님께 말하는 일이 필요하다.
관계란 항상 서로 간에 의사 소통과 대화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심정을 하나님 앞에 토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영적 생명과 힘을 얻기 위하여 우리 하늘 아버지와의 실제적인 교제를 가져야 한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사모하기도 하고 또한 그의 업적과 그의 자비와 그의 축복에 대하여 명상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우리의 실제적인 매일의 생활에 대하여 하나님께 무엇인가 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대화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심정을 펼쳐놓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형편을 하나님께 알리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의 형편과 마음을 우리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기도의 목적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우리 생활 속에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내려오시게 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 기도이다.
이러한 생각은 기도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커다란 혁명을 일으켜 줄 수가 있다.
기도란 우리의 뜻을 관철하기 위하여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이 하나님께 매어 달리거나 졸라대는 식의 호소가 아니다.
기도는 우리의 원하는 것을 받아낼 때까지 하나님의 팔을 비틀어대는 식으로 붙들고 늘어지는 어거지도 아니다.
기도는 오히려 우리가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그분의 뜻을 수용할 수 있게 되기 위하여 주님과 나누는 대화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도 훨씬 더, 우리를 향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할지를 가르쳐 주셨다.
주님께서는 저희의 매일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고 저희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 자신도 이 땅에 거하실 때에 자주 기도하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의무와 시련을 위하여 굳세게 나아갈 수 있도록 당신의 아버지께 새로운 능력을 달라고 늘 기도하셨다.
예수께서 이른 아침에 기도하시고 산에서 내려오셨다는 기사를 우리는 성경에서 자주 읽게 된다.
예수는 모든 일에 우리의 모본이 되신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이 연약한 인간의 몸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다(히 4:15절 참조).
그분도 죄악 세상에서 마음 속의 많은 투쟁과 고민을 경험하셨다.
그분도 인간으로 오셔서 사셨기에 절실하게 기도가 필요하셨다.
예수께 있어서 기도는 하나의 큰 특권이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와 교통하는 기도의 경험에서 큰 위안과 기쁨을 발견하셨다.
인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분도 기도의 필요를 느끼셨는데, 하물며 이렇게 연약하고 죄가 많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이야 어떠하겠는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려고 항상 기다리고 계신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샘에서 마음껏 퍼마시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가 기도를 그렇듯 적게 하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 중에 아무리 비천한 자일지라도 진정으로 하는 기도 듣기를 고대하시지만 우리들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기도로 말씀드리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그리워 하시고 저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들이 이렇게 기도를 적게 하고 있으니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는 하늘의 천사들은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천사들이 아무리 우리를 도와 주고 싶어도 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도와줄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 하고 있을 것이다.
천사들은 하나님 앞에 경배하기를 좋아하며 그분 앞에 가까이 있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을 저들의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는 일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기도를 게을리하는 자들을 어두움으로 가두어 놓는다.
이 원수의 속삭이는 시험은 저들을 죄에 빠뜨리려고 유혹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도의 특권을 사용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쌓아 둔 하늘 창고를 여는 믿는 자의 손에 있는 열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어쩌면 이렇게 기도하기를 싫어할 수 있을까?
끊임없이 기도하고 늘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는 부주의하게 되고 정로에서 탈선하게 되는 것이다.
사단은 우리가 열성 있는 기도를 통하여 시험을 이길 만한 은혜와 능력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으려고 끊임없이 애쓰고 있다.
기도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면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를 기대하려면 거기에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를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리라” (사44:3)고 말씀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같이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은 확실히 배부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7:7)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두 번째는, 회개하는 심정으로 주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죄를 품든지, 알고 지은 죄를 버리지 아니할 것 같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고 통회하는 자의 기도는 언제든지 받으실 것이다.
모든 아는 죄를 바로잡은 후에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예수의 공로이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그분의 보혈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께서 받으시는 조건을 응하기 위하여 우리 편에서도 할 일이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응답받는 기도의 또 하나의 요소는 믿음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히11:6) 한다.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고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광범위하고 무한하며 약속을 허락하신 분은 진실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구하는 그것을 꼭 우리가 구하는 바로 그 시간과 그러한 방법대로 받지는 못 할지라도 우리는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흠이 많고 장래 일을 잘 내다보지 못함으로 어떤 때에는 우리 자신들에게 축복이 되지 못하는 것들을 구하기 일쑤이다.
그러므로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써 우리에게 가장 좋은 방법대로, 다시 말해서 만일 우리가 영적으로 눈이 밝아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볼 수만 있다면 우리 자신도 그렇게 원하며 구하게 될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듯한 때라도 우리는 그 허락을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이다.
응답의 시간은 확실히 올 것이며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도는 언제나 우리가 꼭 원하는 방식으로 응답되고 또한 우리가 꼭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지혜로우시므로 잘못하실 리가 없는 것이요, 지극히 선하시기 때문에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반드시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기도가 즉시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그의 확실한 허락을 믿어야 한다.
네 번째,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과 축복을 구하려고 할 때에 우리는 우리 마음 가운데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라고 기도하면서 어떻게 용서하지 않을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를 바랄진대 우리는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용서해 주어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 기도를 꾸준히 하는 일은 응답을 받는 조건이 된다.
우리의 믿음과 경험이 자라나기를 원할진대 우리는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우리는 깨어서 항상 기도하며, 감사함으로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한다.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4:7)고 권하였다.
바울은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4:6)고 가르쳤다.
유다는 “사랑하는 자들아…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 (유 20,21)라고 말씀하였다.
끊임없는 기도는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과 끊임없이 연결됨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와서 우리의 생명으로 들어오고 다시 순결과 거룩함이 우리의 생명에서 하나님께로 흘러 돌아가게 한다.
기도에 있어서는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무슨 일이든지 간에 우리의 기도하는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예수와 우리들의 심령 사이에 교통함이 막히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해야 한다.
기도할 때에 우리가 늘 습관적으로 하는 곳으로 가서 기도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참으로 원하는 자들은 기도회에 참석하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정 안에서 기도할 것이요, 무엇보다도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여서는 안된다.
기도를 등한히 하면서 영혼이 번영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족 기도와 공중 기도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홀로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 앞에 우리의 심령을 내어놓는 일이 중요하다.
비록 우리의 주위가 부패된 분위기로 둘려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더러운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 하늘의 깨끗한 공기 가운데서 살 수 있다.
우리는 진정한 기도로써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올림으로 불순한 망상이나 불경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문을 막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붙들어 주심과 그분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마음 문을 열어 놓는 자들은 이 땅의 분위기보다 더 거룩한 분위기 가운데서 살 수 있게 될 것이며 하늘과 끝없는 교통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찬송의 날개를 타고서 하늘로 더욱 가까이 오를 수가 있다.
찬송은 곡조에 담은 다른 형식의 기도이기 때문이다.
기도는 우리의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는 더 많이 기도하여야 한다.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우리는 더욱 더 많이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도는 성경적인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극단적이고 광신적인, 그리고 지극히 이기적이며 무엇을 얻어 내기 위해 보채는 형식의 기도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그러한 기도는 사실상 자기 도취이지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과의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도는 우리의 권한이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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