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1년 3월 10일 (목) - 시간을 아끼라

은이dii 2011. 4. 21. 16:47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미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거물인 벤자민 프랭클린이 필라텔피아에서 책가게를 경영하고 있었을 때, 어떤 젊은 사람이 책을 사러

들어와 그값을 물었습니다.

프랭클린이 얼마라고 말하였더니, 좀 깍을 수가 없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런 법이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손님은 계속 졸랐습니다.

그랬더니 프랭클린은 그 책값을 낮추지 않고 오히려 올렸습니다.

그 이유를 묻는 손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내 귀한 시간을 자꾸만 뺏어가니 불가불 책값을 올릴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하며, 더 끌면 더 올리겠다고 하므로 그 손님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프랭클린이 부르는 값을 그대로 주고 그 책을 사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시간의 귀중함을 일러주는 휼륭한 교훈이라고 생각 합니다.

세월은 잠깐입니다.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30이 되고 40이 됩니다.

예전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끌고 흥미를 돋구는 실속 없는 눈요기나 심심풀이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위험천만한 세대입니다.

그러기에 바울 선생이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시간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하였을 것입니다.

때가 악하니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허락된 삶을 보람있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역을 위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삶을 사셨다.

당신은 어떤 일 때문에 하루의 24시간이 모자라는 삶을 살고 있는지 조용히 생각해 보라.

 

[막 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지혜로운 사람처럼 삽시다

5:15-20

 

1. 오늘 본문에 "여러분은 지혜 있는 사람처럼 사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사도 바울이 복음 전도자로서 살다가 감옥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지혜로운 사람처럼 사십시오!"  

얼마나 이 시대에서도 적절한 말씀입니까? 성도들을 향해 지혜 없는 사람들처럼 어리석게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들처럼 지혜롭게 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누구보다 지혜롭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지혜롭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혜롭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듭 말하기를 성도들은 '어리석은 자들처럼 그렇게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밖에 없는 삶을 지혜롭게 살지 못하고 가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후회들을 합니다. 기회를 다 놓치고서야 후회를 합니다. 세월을 다 보내고서야 후회를 합니다. 물질을 다 날리고서야 후회를 합니다. 건강을 다 잃고서야 후회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후회 뒤에는 그만큼 자신이 어리 석게 살았다는 자책(自責)이 있을 뿐, 지나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여기서 어리석게 산다는 것은 허랑 방탕(虛浪放蕩)하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어사전에는 <허랑 방탕>'허랑 하고 방탕한 것' 이라 하고는, <허랑>'말이나 짓이 허황하고 실답지 못한 것' 이라고 해석했고, <방탕>'마음이 들떠 걷잡을 수 없는 것'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목적의식이 없이 본능 욕에 따라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결국 주(), (), 잡기(雜技)로 빠져든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됨의 제일 큰 목적은 그래도 무엇인가 가치(價値)를 추구(追求)하면서 사는데 있는데, 전혀 그런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살아온 삶을 의미합니다. 물론 자신의 이상(理想)과 현실에서 오는 갈등에서 잠시 동안 곁길로 들어선 것을 전적으로 허랑 방탕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은 어느 순간 깨닫게도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방탕(放蕩)이란 고의(故意)성을 가진 교만과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을 의미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보면, 어떤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였는가?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사는 자들이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일하는 모든 것이 다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하지 말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를 경외하면서 하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어리석은 삶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일반 사람들의 희비(喜悲)에 쉽게 동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에 없는 사람들은 유행(流行)에 민감합니다. 아니 어쩌면 유행이 삶의 근원일지도 모릅니다. 유행에 맞추어 살려고만 했지, 하나님의 뜻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력도 없거니와 전혀 관심도 없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곧 어리석게 사는 삶이란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유행하는 말을 보면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어렵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옛날처럼 장사가 안 되고, 옛날처럼 수입이 없고, 옛날처럼 여유가 없고, 옛날처럼 즐기지도 못하고, 옛날처럼 흥청대지도 못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여 우리들도 덩달아 <어렵다>고만 하면서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 앞에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처럼 과 똑같이 근심하고, 와 똑같이 걱정하고, 과 똑같이 불안해하고, 와 똑같이 낙심하고, 와 똑같이 좌절한다면, 그것이 과연 믿음으로 사는 지혜롭게 사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우리 믿는 성도들은 무엇인가 좀 달라야 할 것입니다. 그 다르다는 것이 바로 <구별된 삶> 즉 성도(聖徒), 거룩한 무리란 뜻입니다. 초대 기독교의 신자들은 확실히 당시대의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 시대의 유행에 맞추어 산 것이 아니었고, 먼저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까지 저들의 신앙생활이 우리들의 본()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시대이건 신자들은 어려움 없이 살아간 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면 지혜 있는 자처럼 산다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까?

 

지혜로운 삶이란 세월을 아끼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낀다'는 헬라어 원문에는 '엑사고라조'(ejxagorazw)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시간에 밀려서 떠내려가는 삶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시간을 최상의 것으로 만들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구 번역에는 '시간을 속량하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즉 시간을 잃어버리지 말고 자기의 것으로 값을 지불하고 사(購買)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구역 이 원문에 더 가깝 게 번역 하였 다고 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그대로 놓아두면 그대로 흘러갑니다. 마치 물이 흘러가듯 그냥 지나쳐 흘러간다는 말입니다. 그 흐르는 물을 유용하게 이용하여 논밭을 만들고, 땜을 막아 발전을 하는 것처럼, 시간도 흘러가도록 내 버려두지 말고 값을 지불하여 사(purchase)라는 것입니다. 값을 지불하여 얻은 것은 그만큼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사는 성도들이라면 세월에 밀려서 생각 없이 떠내려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월 속에서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면서 주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힘쓰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지혜롭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는 헛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제일 똑똑한 것처럼 살지만 어리석게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지식의 근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 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모르고야 어찌 그 지식이 참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근본을 모르는 지식이기에 바로 헛된 지식이거나 모자라는 지식이란 말입니다.

 

여러분!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지식의 근본을 알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세상에는 헛 똑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기 생각에는 자기 분야에서 제일 많이 안다고 교만할는지 모르지만, 근본을 모르는 지식이 어떻게 정확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입니다. 정확한 지식도 아닌 그런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살아가니, 바로 그렇게 헛 똑똑으로 사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지혜로운 삶이란 성령이 충만한 삶을 의미합니다. 또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냐? 본문에 보면 술 취해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술취하면 의식이 없어집니다. 제정신이 아니란 말입니다. 헛소리를 하게 됩니다. 무례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술 취하면 만용(蠻勇)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 두려운 줄도 모릅니다. 요즘 불경스러운 말들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입에 담지 못할 불경스러운 말들을 하는 것을 얼마든지 보게 됩니다. 왜 그런 말들을 합니까? 모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제정신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지혜 있는 삶이란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 없이는 살수 없습니다. 기뻐도 술, 슬퍼도 술, 항상 술 취하여 있습니다. 바로 그렇게 사는 것이 어리석은 삶이란 것입니다. 저들은 말합니다. '술을 안 먹고 어떻게 슬픔을 잊겠느냐?'고 하면서 술을 먹습니다. '술을 먹지 않고서야 이 고통을 어떻게 잊겠느냐?'고 하면서 술을 먹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술이 고통을 잊게 해 줍니까? 술이 슬픔을 잊게 해 주느냐?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 취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삶이란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성령 충만을 '하나님께 예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 Yes 만 하면서 살면 그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에 동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 없이 하는 일체의 모든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면, 하나님과 함께 모든 것을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이고, 그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란 것입니다. 즉 말씀에 <>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삶이란 말씀입니다.

 

성령에 관하여 대부분의 경우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기분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옷 입듯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옷은 우리 몸에서 뗄 수 없습니다. 옷 없이는 일체의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 성령 충만한 삶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뜻을 항상 살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삶이란 것입니다.

 

3. 지혜 있는 자처럼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 어둡고 악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 악하다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둠을 좋아하고 진리를 거슬러 악해졌다는 말입니다. 어둠을 좋아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대로 보면 육체를 따라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지혜롭게 사는 사람들은 오늘 본문에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말이란 그 사람의 마음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 자연히 겉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말()입니다. 누추한 말은 가꾸지 않고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까쉽이나 불평스러운 말은 습관이 되기 쉽습니다. 때가 악하기에 사람들의 마음도 악해졌고, 말도 누추해졌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5:5)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누릴 시민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시민답게 격()이 높아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와 찬미(讚美)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천국을 이미 소유하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때가 악하기에 지혜 있는 자처럼 살아야 할 때입니다.

 

요즘 믿음의 가정들에게 부탁합니다. 어리석게 사는 자들이 되지 맙시다. 세상 사람들처럼 그렇게 쉽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맙시다. 더욱이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행동하지 맙시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을 맞이했어도 지혜 있는 자처럼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입니다. 우리는 도리어 생활을 통하여 전도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렇게 어렵다고 하는 때일수록 믿는 가정들에게는 시와 찬미가 있어야 하겠고,

무엇이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생활들이 있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가장 선하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를 부끄럽게 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참 소망되신 하나님의 약속이기때문입니다.


출처 : 주님의 시선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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