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도자가 심한 중병에 걸려 임종의 때가 가까와 온 것을 알고 가족들을 침상으로 불렀습니다.
아들 중 둘은 결혼했고 막내아들은 아직 미혼이었습니다. 전도자는 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잘있거라, 하늘에 들어가는 날까지”. 둘째 아들에게도 똑같이 “잘있거라, 하늘에 이를 때까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막내아들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쉬어라”. 막내아들은 놀라서 외쳤습니다.
“아버지 두 형들에게는 하늘에 이를 때까지라고 말씀하시고 왜 저에게는 ‘쉬어라’고 밖에 말씀해 주지 않습니까?” “얘야! 너는 그리스도를 아직 네 주로 영접하지 않았잖니. 그래서 나는 너와 다시는 만날 수 없단다.”
막내 아들은 충격을 받았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마지막을 맞습니다. 그것이 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끝을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죽음을 끝으로 맞는 이들에게 당신은 영생을 권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에게 주어진 전도의 기회는 당신이 살아 있을 때 뿐이다. 죽고 난 이후 전도하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슬퍼할 것인가?
(요 3:16-21)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2. 마산시민교회가 주님의 전도전략을 따라 제자삼는 사역을 통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제 목 : 빚진 자들의 교회 성 경 : 행11:19-30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빚을 져본 경험이 있다면, ‘빚진 자’란 말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떳떳치 못한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 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자기 자신을 ‘빚진 자’라고 서슴없이 말할 뿐만 아니라(롬 1:14), 그리스도인인 우리 모두가 다 ‘빚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 8:12) 대체 우리가 무슨 빚을 졌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복음의 빚’ 입니다. 오래 전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값없는 은혜를 베푸신 예수님께 ‘생명의 빚’을 진, 그래서 그 빚을 우리처럼 죄로 죽어 가는 이웃들에게 갚아야하는 ‘빚진 자들’이 바로 ‘당신과 나’인 것 입니다.
이러한 ‘거룩한 부담감’으로 가득차서 열심히 일하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바로 오늘 본문 말씀에 소개된 ‘세계 선교 본부’로 세움 받은 ‘안디옥 교회’입니다. 이 ‘빚진 자들의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첫째로, 안디옥 교회는 순교자의 정신을 가진 성도들이 세운 교회였습니다.(19-21절)
이 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세운 교회 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고 축복은 커녕 도리어 돌로 맞아 죽은 스데반의 운명을 보고 들었던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를 믿고 부자는 커녕 가지고 있던 가산과 정든 고향 마저도 잃고 피난 길에 올라야만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예수를 전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 이었을까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였을 것 입니다! ‘나는 주님께 빚진 자다.’‘이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주님의 십자가 위의 남은 고통을 덜어 드리기 위해 이 한 목숨 걸고 영혼을 구하는 것이다.’‘나는 참으로 빚진 자다!’
둘째로, 안디옥 교회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 였습니다.(20-21절)
안디옥 교회의 설립자들은 이름도 없는 평신도들 이었습니다. 후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를 파송하였으나, 그 역시 ‘평신도 선교사’였습니다. 아마 이 교회가 오늘 날처럼 몇몇 안수 받은 지도자나, 전문적인 교역자들에게만 모든 책임을 맡겼다면 세계 선교의 중심지로써의 안디옥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교회가 힘써야 할 것은 ‘빚진 자’의 자세를 가진 평신도들의‘작은 목자화 훈련, 입니다.
셋째로, 안디옥 교회는 합심하여 실천하는 교회 였습니다.(29-30절)
사실 사도행전 13장 1절에 의하면 안디옥교회의 구성원은 천태만상 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유대인, 시므온은 니게르- 흑인, 루기오는 구레네인-아프리카 사람, 그리고 마나엔은 왕족 등, 이렇게 각기 다른 인종, 다른 계층의 사람들로 구성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가 되어 선교 계획을 수립하고, 또 실행하였던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빚진 자들’ 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거룩한 부담감’에 사로잡혀 우리 모두 멀리 있는, 그리고 가까이 있는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전합시다. ‘나는 빚진 자라!’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고백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