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스크랩] 일일신앙점검을 위한 예화말씀묵상 2010년 7월 17일 (토) - 진정한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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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거침없이 기차는 자신의 길을 달립니다. 가파른 언덕길도, 구불 구불한 골짜기도, 높은 절벽 사이의 구름 다리라도 그곳에 레일만 놓여있다면 기차는 자유롭습니다. 또한 눈보라가 쳐도, 비바람이 심한 칠흑의 밤이라도,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안개 속이라도 레일 위의 기차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레일이 끊어진다면, 그때부터 기차는 혼란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결국 전복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곳이 아무리 평평한 들판이라 할지라도…. 언뜻 보기에 기차를 구속하는 것처럼 보였던 레일이 바로 기차를 진정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우리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말씀 위에 서서 나아갈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레일 위의 기차는 진정 자유하다. 다만 그 옆을 지나가는 마차나 자동차를 더 자유스러울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2. 마산시민교회가 개척 1주년을 맞았습니다. 자립하는 날까지 기도와 물질의 후원이 필요한 교회입니다. 개척교회를 후원할 수 있는 교회나 성도님들의 도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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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요8:31-38
우리 기독교인들은 진리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진리를 위하여 살다가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죽은 사람들을 가르쳐서 순교자라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2천년 역사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 이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음을 당해야 했습니다. 맨 처음 진리를 위하여 죽음을 당한 사람은 스데반집사 이고 맨 마지막으로 죽음을 당한 사람은 몇 일전 중국에서 주일 날 당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지하교회에 나갔다가 붙잡혀서 경찰들에게 매 맞아 죽은 중국의 교인이였습니다. 기독교는 진리를 지키며 살고 그 진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진리를 위하여 죽음을 당하면서 이어져 온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진리를 위하여 죽으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도 바로 진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것이며, 예수님께서 천국을 예비하신 것도 진리를 지키며 살아 온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진리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 곧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성경 말씀이 진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어에서 진리는 에메트라는 말입니다. 이는 “결코 변치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천지는 다 없어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따라 사는 자라는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진리라고 증거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위하여 산다. 또는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는 말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산다는 말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를 깨달아야 하고, 진리를 소유해야 하며, 진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쳐서 살아야 하고, 진리를 가르치고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깨닫는 다는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요18장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있을 때 빌라도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진리를 증거하기 위하여 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 빌라도는 38절에서 “진리가 무엇이냐?” 라는 유명한 질문을 하고 주님께로부터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서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었지만 사실은 진리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빌라도의 관심은 진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땅에서 총독의 일을 잘 마치고 로마 황제에게 인정을 받고 승진하여 로마로 돌아가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진리를 잘못 깨닫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진리에 대해서 알고는 싶으나 인내심이 없어서 중단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인쉬타인의 상대서 원리를 이해하려면 최소한 3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리중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기도와 노력과 헌신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미국에서 어느 여인이 공중전화에 들어가서 전화를 걸고 나오려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을 들여 문을 열었지만 열리지가 않는 것이 였습니다. 그는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전화국에 전화를 하여 “지금 내가 공중전화를 걸고 나가려 하는데 문이 고장나서 열리지 않으니 와서 문을 고치고 나를 구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전화국에서 직원이 급하게 달려와서 문을 열었는데 금방 열리는 것이 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문은 안으로 잡아 당겨야 하는데 이 여인이 당황하여 밖으로 밀기만 하니 열릴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문을 여는 법을 알면 어린아이도 쉽게 열 수 있는 문이 였는데. 이 여인은 문을 여는 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 작은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몇 십분 동안 고생을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면 우리의 삶도 기쁘고 평안할 것이며 감사가 넘쳐 나오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면 생명의 문을 바로 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으며, 또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고 진리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슬픔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들은 진리를 알고 진리를 소유해야 하며,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하며, 진리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를 따라 산다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1. 우리들의 삶의 표준을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2. 진리를 따라 살아 간다는 말은 영적으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3. 진리 안에서 사는 자라는 말은 소금과 빛처럼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소금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금은 세상에서 아주 값이 싼 것이며 흔한 것입니다. 일상적인 것이 바로 소금입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시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다이아몬드니” 또는 “너희는 세상의 금덩이 이니” 하셨다면 우리들이 세상에서 더 귀하고 존귀한 자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러시지를 않으시고 그 흔하고 흔한 “소금이니” 하셨습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귀족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금은 방의 진열장 속이나 깊은 금고 속에 숨겨져 있는 귀금속이 아니라 쌀집에서나 슈퍼에서 얼마든지 싼 값으로 살 수 있고 아무 집 부엌에 가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그저 흔한 존재이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아야 하며 평범한 존재로서 살아야 하는 진리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소금이지만 그 가치는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소금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계실 당시에는 소금으로 군인들의 봉급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소금 한 자루와 사람 한 명을 바꾸기도 하였고 그래서 소금을 얻기 위하여 딸을 주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살아있는 동물에게는 꼭 소금이 필요합니다. 소금을 먹지 못하면 병이 들거나 죽게 되는 것입니다. 양을 키우는 유목민들은 양이 소금을 먹지 못하면 비실 비실 하며 기운을 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풀밭에 소금덩이를 가져다 놓으면 양들이 소금을 핥아먹게 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여름에 소가 땀을 많이 흘리고 기운을 못쓰면 소금을 먹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서 금이나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금이 없으면 살수 없는 것이기에 소금이 그 가치가 더 존귀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진리안에 사는 성도는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힘이 있습니다. 음식의 썩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 음식은 소금에 절이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사는 자는 이 세상의 부패를 막아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소금은 맛을 내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두번째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세가지 종류의 빛이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는 말씀은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빛은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거룩함을 드러내고 영적인 빛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둡고 추한 죄악의 모습으로 세상을 비추는 자들이 아니라 환하고 밝은 생명의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비추어야 하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빛은 생명을 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빛이 없으면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빛은 인생의 삶의 방향을 바로 정해 주는 것입니다. 경제사가 토인비는 “이 세상은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희망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진리안에서 빛이 되여 사는 우리 기독교인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따라 살아야 하고, 어두움에서 죄악으로 죽어 가는 영혼들 또한 죄악의 공포로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그 빛을 비추어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진리의 빛을 찾게 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진리를 따라서 살아갈 때 우리에게 어떠한 복이 오겠습니다. 1. 진리를 따라 사는 자들은 세상의 죄악과 사탄의 권세를 이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진리의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2. 진리를 따라 사는 자들은 거룩함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진리를 따라 사는 성도는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4. 진리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새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진리안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하고 진리를 소유해야 하며, 진리를 행하고 전해야 하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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