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인생(人生)의 길
렘 10:23-25절, 93.204.444장.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우리는 일찍이 한번도 지나가 보지 못한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낯선 길을 떠나면서 긴장과 흥분이 있는가 하면, 또한 새롭게 전개될 길에 대한 환희와 망설임이 동시에 있을 것입니다.
사실 새해가 되고 절기가 바뀌었지만, 그것은 다만 계절과 절후의 매듭이요 달력상의 시간이 변했을 뿐이지 별로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는 전도서의 말씀처럼,
어제의 태양(太陽)이 다시 떠오르고 같은 길, 같은 직장, 같은 식구, 같은 집, 같은 환경일 뿐, 그 어느 하나 달라진 새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달력상의 시간이나 계절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새해가 되면 모든 것이 새로와질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소원 사항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달력상의 시간이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인간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앙과 결단으로 그 길을 걷는가에 따라서 새로운 해를 만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인생이 새로와지지 않으면 새 것도 새 것일 수 없고, 새로운 제도도, 새 환경도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인생이 새로와지기 전에는 해 아래는 아무것도 새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영원을 상대로 하여 사는 그리스도인 이기 때문에,달력상의 시간을 중심해서 기뻐할 것도,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었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새해가 되었다고 덤빌 것도 아니며,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고, 과거의 회상에만 빠져 있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일찍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깨달었던 "인생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서 금년 한 해가 신앙도 인생도,승리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처음부터 선지자가 되려고 소원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주의 종이 된 사람입니다. 자기 스스로 선지자가 되겠다는 의식보다,
그의 가슴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뜨거운 불이 붙었기에 그는 어쩔 수가 없어서 선지지가 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이름이 가지는 뜻처럼 "여호와께서 던지신 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주전 628년에 선지자가 되어서 50년 동안을 예루살렘 최후의 멸망까지 맨발로 울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일생동안 선지자로서의 길은 평탄치 못했습니다. 그가 선지자가 된 후에는 자기 가족들로부터는 핍박을 많이 받았고,
특히 고향사람들로부터 따돌림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시대의 부패와 타락을 걱정하며 눈물 흘리는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그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아픔을 함께 하였기에 그가 깨달은 진리가 또한 컸습니다.
우선 예레미야 10장 23절 전까지를 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곧 우상숭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는 어리석은 자이며,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인 것을 바로 알 때에 진리를 바로 깨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와 하나님과의 연합이 무척 중요한 것이고, 성도는 괴로움과 환란을 통해서 성화(聖化)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 고난당할 때,
자기의 죄를 깨달으면서, 자기가 그 고난을 마땅히 받을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지금까지의 깨달은 진리보다 더 위대한 진리를 하나 깨닫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선택한 이 본문입니다.
예레미야는 그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이 어떤 것인 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가 깨달은 두 가지 깊은 진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레미야는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에는 길이란 말이 약 400여회나 나타납니다. 길이란 그저 하나의 도로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한평생의 여정, 인생이 걸어가야 할 도리, 인생의 방법, 진리 등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길을 수식하는 형용사로서 생명의 길, 의인의 길, 바른 길, 평강의 길, 겸손한 자의 길, 생명나무의 길 등… 많은 "진리의 길"들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위의 본문을 보면, "인생의 길"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은 인생 자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 아래 있다는 깊은 진리를 예레미야는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믿음이 약했을 때는 인생길이 자기 손에 있는 줄 알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깨달은 것은 인생의 길이 자기 손에,달린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길에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을 체험적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깨달은 진리는, 결국 참된 구원의 종교는 자율주의(自律主義)가 아니고 타율주의(他律主義)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확실히 길을 제시하는 선지자였습니다. 민족의 길, 신앙의길, 인생의 길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깊이 묵상해 볼 때, 종교라고 다 같은 종교이겠습니까, 신앙이라고 다 같은 신앙이겠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은 믿는 사람도 많아졌고 교회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는 줄 알고 있고, 자기 중심으로 믿고 있고, 자기 스스로가 인생을 개척하고 결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기독교는 19세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율주의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모든 것을 할 수있다는 인간 예찬이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자율주의는 바로 고삐풀린 말과 같습니다. 인생은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기에 인생의 길을 자기에게 두면 필경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 때 참으로 실패없는 생애가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 생활입니다.
이런 깊은 깨달음과 고백이 금년 한 해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는 진리입니다. 길이 확실할 때 그 걸음도 확실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인생의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신에게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순간순간의 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삶의 구체적인 표준이 부패하고 불완전한 나 자신이 아니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줄을 그는 알았습니다. 사실상 인생의 걸음을 지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神本主義) 신앙을 갖는 사람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에(롬11:36절) 그의 지도만이 참된 지도요 그의 지도를 따르는 것만이 인생의 길을 따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는 냉랭한 논리만이 아니고 걸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길이라면 삶은 곧 걸음입니다.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사상은,생각도 삶도 하나님께서 주장해 주셔야 된다는 사상입니다. 우리의 한 순간 한 순간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면전(Coram Deo)에 있을 때 우리의 일생은 주 안에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하겠노라고 덤비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걸어가야,하는가의 구체적인 신앙의 원리를 바로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걸음은 내 스스로, 내 뜻대로, 나의 의지로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걸음이어야 실패없는 걸음이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깨달은 진리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의 내용을 제시합니다. 결국 신앙은 내 표준이 아니고 하나님을 중심한 신앙이어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자만이 참으로 하나님께 붙들린 바 되어서 뜨겁게 하나님께 바쳐지는 위대한 생애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도 결국 렘 10장 23절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걸음을 걷는 것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으로 알고, 빛되신 말씀, 등불이 되신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는 인생의 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레미야가 말한대로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고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면 누구에게 있단 말입니까?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가 제기한 질문을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답하고 있습니다.
요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구약의 진리와 신약의 진리는 하나입니다. 인생의 길이 인생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고 그리스도께 있다는 진리입니다.
이와 같이 신, 구약이 가르치는 신본주의 신앙에 머물 때 만이 우리는 참 평안을 가질 수 이 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말씀이 새해 첫 주간을 맞이하시는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진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렘 10:23-25절, 93.204.444장.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우리는 일찍이 한번도 지나가 보지 못한 길을 떠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낯선 길을 떠나면서 긴장과 흥분이 있는가 하면, 또한 새롭게 전개될 길에 대한 환희와 망설임이 동시에 있을 것입니다.
사실 새해가 되고 절기가 바뀌었지만, 그것은 다만 계절과 절후의 매듭이요 달력상의 시간이 변했을 뿐이지 별로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는 전도서의 말씀처럼,
어제의 태양(太陽)이 다시 떠오르고 같은 길, 같은 직장, 같은 식구, 같은 집, 같은 환경일 뿐, 그 어느 하나 달라진 새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달력상의 시간이나 계절이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새해가 되면 모든 것이 새로와질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소원 사항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달력상의 시간이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인간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신앙과 결단으로 그 길을 걷는가에 따라서 새로운 해를 만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인생이 새로와지지 않으면 새 것도 새 것일 수 없고, 새로운 제도도, 새 환경도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인생이 새로와지기 전에는 해 아래는 아무것도 새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영원을 상대로 하여 사는 그리스도인 이기 때문에,달력상의 시간을 중심해서 기뻐할 것도,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나이가 한 살 더 먹었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고, 새해가 되었다고 덤빌 것도 아니며,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고, 과거의 회상에만 빠져 있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일찍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깨달었던 "인생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알아서 금년 한 해가 신앙도 인생도,승리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본문의 말씀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처음부터 선지자가 되려고 소원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서 주의 종이 된 사람입니다. 자기 스스로 선지자가 되겠다는 의식보다,
그의 가슴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뜨거운 불이 붙었기에 그는 어쩔 수가 없어서 선지지가 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이름이 가지는 뜻처럼 "여호와께서 던지신 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주전 628년에 선지자가 되어서 50년 동안을 예루살렘 최후의 멸망까지 맨발로 울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일생동안 선지자로서의 길은 평탄치 못했습니다. 그가 선지자가 된 후에는 자기 가족들로부터는 핍박을 많이 받았고,
특히 고향사람들로부터 따돌림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 시대의 부패와 타락을 걱정하며 눈물 흘리는 선지자였습니다. 선지자가 그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아픔을 함께 하였기에 그가 깨달은 진리가 또한 컸습니다.
우선 예레미야 10장 23절 전까지를 보면 대강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곧 우상숭배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아무리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는 어리석은 자이며,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인 것을 바로 알 때에 진리를 바로 깨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와 하나님과의 연합이 무척 중요한 것이고, 성도는 괴로움과 환란을 통해서 성화(聖化)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또 인간이 고난당할 때,
자기의 죄를 깨달으면서, 자기가 그 고난을 마땅히 받을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지금까지의 깨달은 진리보다 더 위대한 진리를 하나 깨닫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선택한 이 본문입니다.
예레미야는 그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이 어떤 것인 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가 깨달은 두 가지 깊은 진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예레미야는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에는 길이란 말이 약 400여회나 나타납니다. 길이란 그저 하나의 도로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한평생의 여정, 인생이 걸어가야 할 도리, 인생의 방법, 진리 등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길을 수식하는 형용사로서 생명의 길, 의인의 길, 바른 길, 평강의 길, 겸손한 자의 길, 생명나무의 길 등… 많은 "진리의 길"들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위의 본문을 보면, "인생의 길"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은 인생 자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 아래 있다는 깊은 진리를 예레미야는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믿음이 약했을 때는 인생길이 자기 손에 있는 줄 알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깨달은 것은 인생의 길이 자기 손에,달린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길에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을 체험적으로 깨달은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깨달은 진리는, 결국 참된 구원의 종교는 자율주의(自律主義)가 아니고 타율주의(他律主義)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확실히 길을 제시하는 선지자였습니다. 민족의 길, 신앙의길, 인생의 길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깊이 묵상해 볼 때, 종교라고 다 같은 종교이겠습니까, 신앙이라고 다 같은 신앙이겠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은 믿는 사람도 많아졌고 교회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는 줄 알고 있고, 자기 중심으로 믿고 있고, 자기 스스로가 인생을 개척하고 결단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기독교는 19세기가 그러했던 것처럼 자율주의를 예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모든 것을 할 수있다는 인간 예찬이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자율주의는 바로 고삐풀린 말과 같습니다. 인생은 죄로 말미암아 어두워졌기에 인생의 길을 자기에게 두면 필경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 때 참으로 실패없는 생애가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중심의 신앙 생활입니다.
이런 깊은 깨달음과 고백이 금년 한 해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는 진리입니다. 길이 확실할 때 그 걸음도 확실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인생의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신에게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순간순간의 걸음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삶의 구체적인 표준이 부패하고 불완전한 나 자신이 아니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줄을 그는 알았습니다. 사실상 인생의 걸음을 지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神本主義) 신앙을 갖는 사람입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에(롬11:36절) 그의 지도만이 참된 지도요 그의 지도를 따르는 것만이 인생의 길을 따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는 냉랭한 논리만이 아니고 걸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 길이라면 삶은 곧 걸음입니다.
결국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사상은,생각도 삶도 하나님께서 주장해 주셔야 된다는 사상입니다. 우리의 한 순간 한 순간의 삶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면전(Coram Deo)에 있을 때 우리의 일생은 주 안에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하겠노라고 덤비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걸어가야,하는가의 구체적인 신앙의 원리를 바로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걸음은 내 스스로, 내 뜻대로, 나의 의지로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걸음이어야 실패없는 걸음이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깨달은 진리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신앙의 내용을 제시합니다. 결국 신앙은 내 표준이 아니고 하나님을 중심한 신앙이어야 할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런 신앙을 가진 자만이 참으로 하나님께 붙들린 바 되어서 뜨겁게 하나님께 바쳐지는 위대한 생애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도 결국 렘 10장 23절의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걸음을 걷는 것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으로 알고, 빛되신 말씀, 등불이 되신 말씀을 붙들고 승리하는 인생의 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예레미야가 말한대로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고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않다"면 누구에게 있단 말입니까?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가 제기한 질문을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답하고 있습니다.
요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구약의 진리와 신약의 진리는 하나입니다. 인생의 길이 인생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고 그리스도께 있다는 진리입니다.
이와 같이 신, 구약이 가르치는 신본주의 신앙에 머물 때 만이 우리는 참 평안을 가질 수 이 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말씀이 새해 첫 주간을 맞이하시는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진리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3927Bible 말씀연구소
글쓴이 : 박봉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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