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내게 주어진 선택의 권리
내게 주어진 선택의 권리
우리의 양심은 예민해져야 한다.
가장 작은 음성도 가장 크게 알아들을 수 있는 예민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을 실험실 안에서 증명해 보려고 애쓰지만, 양심 속에서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은 좁은 실험실에서 증명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주관하시는 위대한 분이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지만, 지금도 인간의 양심을 통하여 분명한 음성을 발하신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양심은 선과 악의 두 가지 음성을 듣는다.
한 쪽에서는 선과 진리의 음성이 들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악과 거짓의 음성이 들린다.
어떤 음성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세상은 나에게 악의 음성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세상은 나에게 거짓과 죄를 강요한다.
이 세상에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악이 선을 누르고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선을 추구하는 나의 양심은 고뇌와 고통 속에서 날마다 원치 않는 시련을 받는다.
때때로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힌다.
차리리 선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있거나, 악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일말의 핑계가 나에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하나님도 내게 선택을 요구하시고, 악마도 내게 선택을 요구한다는 사실과 내가 선을 선택할 때마다 내 영혼 속에 완전한 평안이 깃든다는 사실을.
내가 악을 선택할 때마다 양심은 더 큰 괴로움을 당하였고, 평화와 행복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으며, 잔잔한 미소는 사라져 버렸다.
선은 희생을 요구하고, 악은 돈과 명예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선은 인생에 커다란 손해를 가져오고, 악은 번영을 약속하는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선은 참된 행복과 평화를 약속하며, 악은 불안과 초조와 긴장을 가져다 줄 뿐이다.
선은 영원한 평화를 약속하지만, 악의 뒤에는 순간적인 만족과 영원한 고뇌가 따를 뿐이다.
무엇이 옳은가를 결정하는 문제는 군중들의 지지도에 의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진리인가를 판별하는 것은 사람들의 표결에 의해서 정해지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는 많은 경우에 있어서 진리가 소수의 편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진리는 오히려 당대에는 냉대와 오해와 조롱을 받는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진리는 수백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바로 이러한 이유가 사람들이 진리를 선택하기 꺼려하는 이유가 아닐까?
비록 부족하지만, 나는 오늘도 진리를 선택하고 싶다. 오늘도 선을 선택하고 싶다.
그러나 문제는 나의 의지가 너무나 약하다는 점이다.
나의 의지와 결심은 썩은 새끼줄 같아서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로 하여금 진리와 선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능력자, 예수님을 찾아가야만 한다.
그분께서는 나의 연약함과 사정을 잘 아시고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