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1년 3월 14일 (월) - 밖에 나가 기다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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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미국의 어느 장관이 개인적인 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생겨 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을 일이 있었다. 그가 찾아간 법률사무소는 후배가 하는 곳이었는데 그 장관이 문을 열고 들어가 비서실에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던 젊은 서기에게 변호사를 보기를 청했을 때 젊은 서기는 장관에게 변호사님은 안계시니 "밖에 나가서 기다리시오"라고 하고는 신문으로 눈을 돌렸다. 장관은 밖으로 나왔다. 얼마 후 사무실로 돌아오던 변호사는 자신의 사무실 계단위에 앉아 있는 장관을 발견하고 대경실색을 했다. 무례함을 저질렀던 젊은 서기는 더욱 놀랐다. 우리도 세상적인 일에서 때와 기회를 놓쳤을 땐 뼈아프게 후회하곤 한다. 그럼에도 영적생활의 기회는 무관심하게 거절하고 있는 경우가 많음을 볼 수 있다.
원하신다. 그럼에도 성령의 임재와 기름부으심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해 한달란트 받은 무익한 종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당신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민감하십니까?
[마 12:28-30]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성령과 하나님나라 마 12: 22-30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고쳐주시는 사건으로 인하여 바리새인들과 예수님과의 충돌이 일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가족이나 이웃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인생이 완전히 끝이 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다시 살려내셨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두가지의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첫번째는 23절에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고 했는데 이 말은 "이 사람이야말로 그동안 우리가 기다리던 그 메시야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치유사건으로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24절에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고 대단히 충격적이고 경악스러운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23절의 무리들의 반응으로 인해서 불안함과 함께 강한 시기심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신앙이란 그 속성이 언제나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자 하는 일에 목을 매달아 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언제나 대중들의 반응에 매우 민감했고 자신들이 인정을 받지 못하면 견딜 수 없어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예수라는 존재는 대단히 위협적이고 경쟁적인 관계가 된 것입니다. 예수에게로 향한 관심을 자기에게로 다시 방향을 돌리기 전까지는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흠집을 내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바리새인의 속성이 숨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시험에 드는 대부분은 하나님께로 영광이 돌려지지 않는 것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로 영광이 돌려지지 않는 것으로 인하여 넘어집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것은 무조건 안믿기로 결정하고 산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지금 이 사건 자체를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히 치유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말이 예수께서 귀신의 힘을 빌려서 그런 능력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처음부터 예수와 상관이 없었고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잘못되어져 있는 구제불능성 환자인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은 생각에 대해 주님은 25,26절 너희들의 말대로 내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내었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맞지가 않는 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귀신이 왜 귀신끼리 싸우며, 귀신의 왕이 귀신졸개들을 왜 쫓아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29절에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고 했습니다. 사탄을 내어 쫓기 위해서는 사탄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이가 들어가서 그 세력을 묶을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세력에 묶여 있는 자를 풀어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귀신의 세력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귀신의 세력,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고 오늘날도 여전히 마귀의 세력이 있습니다. 사탄은 비록 제한된 능력이지만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대의 신은 바로 사탄입니다. 이 악령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인격속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지배하고 괴롭혀 왔습니다. 우리는 그 실체를 바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 존재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싸움은 이미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28절에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들을 쫓아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귀신이 쫓겨나는 것이고 벙어리가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생각해야 할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사탄에게 지배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따라갑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인격 속에서 자기의 마음대로 끌고 다니고자 합니다. 그 세력은 이미 힘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 스스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안됩니다. 그 강한 세력을 결박해야만 그 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데 그것은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여러분, 내 힘으로 신앙생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 힘으로 하려고 하는 것을 내려놓고 성령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성령이 임하시도록 간구하십시오. 성령은 그 어떤 세력보다 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묶고 있는,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못하도록 붙들고 있는 그 세력들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0절에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단호하게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신앙에 중간지대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든지 세상을 위해서 살든지 그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왜 갈등이 있습니까? 무조건 진리편에 서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결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단을 내리고 나면 갈등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이 아주 날카롭게 나누어져서 갈수록 더욱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분명한 태도가 요구되는 세상입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 주님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되십시오. 주님께서 모으실 때 흩는 자가 되지말고 함께 모으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역사에 언제나 동참하는 자가 되고 반대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는 길은 이중적이지 않고 복잡하지 않습니다. 누가 보아도 분명한 길로 우리는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분명한 태도로 승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