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1년 3월 23일 (수) - 플라톤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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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소크라테스의 사랑하는 제자였던 희랍이 낳은 세계적 철학자인 플라톤(B. C. 427-347)은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약관 28세의 청년이었다. 스승의 죽음을 몹시 애석해 하던 플라톤은 스승을 가리켜 말하기를,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가장 정의로우며, 가장 선한 사람이었다!”라고 찬탄하여 마지 않았다. 그러나 존경하는 스승을 잃은 슬픔에 그는 12년이나 긴 세월을 실의와 절망과 허무에 싸여서 이집트로, 시실리로, 이탈리아로 돌아다니며 방황하였다. 나이 40이 되어서야(B. C. 387) 아테네로 돌아온 플라톤은 철학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가운데 잊을 수 없는 한 마디를 소개한다. “나는 하나님께 세 가지를 감사합니다. 첫째는 내가(야만인이 아닌) 희랍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여자가 아닌) 남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 보다도 하나님께 더욱 감사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소크라테스 시대(age of Socrates)’에 태어난 사실입니다!”
당신에게 당신의 인생과 신앙을 인도해주는 위대한 스승이 있으십니까?
전 12:11
지혜롭게 판단하시오 왕상 3: 28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왕상 3:28)
솔로몬 임금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예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솔로몬 임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으로 축복해 주기를 원하느냐?" 웬만한 임금 같았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막강한 군사력을 주십시오" 했을 겁니다. 그리고 요즘 우리 형편 같았으면 "하나님 달러를 주십시오"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백성을 위한 바른 정치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한 것을 기뻐하시며 그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에 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흘 간격으로 두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조심스럽지 못한 한 엄마는 잠을 자다가 자기 아이를 깔아 질식시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아이와 바꿔친 것이지요. 자기 몸으로 난 사람은 아기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알아 볼 수 있는 법입니다. 아기를 바꿔치기 당한 여인은 죽은 아기가 자기 아이가 아니란 것을 곧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산아기를 가지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지혜를 받은 솔로몬은 사건의 전모를 들은 후에 판결을 내립니다. "아기를 둘로 나누어 두 여인에게 반씩 나누어 주라". 악한 여인은 임금의 판결을 기뻐하며 그리 하라 하였지만 아기의 진짜 어미는 깜짝 놀라며 아기를 포기할 테니 제발 그리 말라고 애원했습니다. 판결은 끝났습니다. 솔로몬의 이 같은 지혜로운 판결 소식은 천하에 퍼졌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와 명철 뿐 아니라 부귀와 영광도 주셨고 권세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은 이와 같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불황에 빠지고 극심한 경제적 가뭄상태에 들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의 복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거기에 승리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판단을 방해하는 잘못된 동기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욕심의 동기입니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했습니다. 욕심으로 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자 할 때 성령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7장에는 욕심 때문에 망한 하간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 성 점령시 모든 것을 태워 없애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의(義)의 전쟁이 전리품을 얻기 위한 점령전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우상숭배를 징벌하고 약속의 백성들에게 땅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聖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광야 길로만 다녔던 아간은 아름다운 외투와 금은덩이를 보고는 쉽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몰래 가져와 그것을 땅에 파묻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간과 그 가문은 결국 멸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보고 탐이 나서"(수7:21)였습니다. 욕심의 동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판단을 막는 두 번째 동기는 분노입니다. 혈기를 가지고 흥분하거나 잘못된 만용, 경쟁심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이와 관련해 에베소서 4:26 말씀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 16:32 말씀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도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성을 빼앗는 다는 것은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이고 재정이 넉넉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은 이런 자보다 분노를 참는 자가 더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을 때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거짓이 지혜로운 판단을 막는 동기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이 거짓의 아비요 대장"(요8:44)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1 말씀은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고 했습니다. 악인의 꾀란 바로 거짓입니다. 거짓의 함정에 속지 말고 분별해서 승리해야 합니다.
네 번째로 미움과 복수심과 증오심이 지혜로운 판단을 해치는 동기입니다. 어떤 인간관계, 사업관계, 직장관계에서도 이런 것이 게재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임금이 됐습니다. 초대 임금이었기 때문에 아직 나라가 혼란했고 사울의 지도력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그 틈을 타 블레셋 군대가 공격해 왔습니다. 다윗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등장시킨 인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울이 알았어야 했지만 그는 시기심과 미움으로 그를 죽이기 위해 모든 왕권과 정력을 소비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절대로 미움과 복수심의 동기에서 판단해선 안 됩니다.
그럼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시편 19:7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119:99-100은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축복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뱀은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인간은 뱀의 말을 따랐기 때문에 낙원에서 붸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때로는 미련한 것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거기에 지혜가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빛이 되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믿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외가 무엇입니까? 존경과 외경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배하는 바른 태도입니다. 예레미야 17:5 이하 말씀에서 이와 관련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살던 때도 국난의 시대였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이 기울어 가는 모습을 보며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레미야 선지자의 활동이 끝났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를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은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경청자(傾聽者)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백성이 잘 산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7절과 8절에서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 지라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여러 성도님들은 걱정 없는 삶들을 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키우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기도한 후에 판단하고 조치해야 합니다. 성령보다 앞서가면 안 됩니다. 예레미야 33:2-3에서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성취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움직이시고 말씀하시면서 주장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느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면 변화를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기도는 신령한 능력이고 축복입니다. 성경에 나온 사람 중 전쟁에서 가장 많이 이긴 사람은 다윗 임금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이 이렇게 많았던 다윗이었지만 그는 항상 전쟁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전문인들의 기술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알지 못하면서 이리 저리 따라가지 말고 해당되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한 번의 판단 잘못으로 일생을 망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에서입니다. 그는 본래 큰 그릇으로 태어나 복 받을 조건과 잠재력이 있었지만 그 근본이 바르지 못했습니다. 야곱은 달랐습니다.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 배고파할 할 때 야곱은 어머니를 도와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야곱의 관심은 하나님의 축복에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에서가 팥죽을 달라고 했을 때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생각했습니다. 한 순간의 판단이 잘못된 것입니다. 창세기 25장 마지막 절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더라"고 적고 있습니다.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김으로 별 볼 일 없는 인생으로 살고 맙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스라엘로 바뀌어 축복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신앙명분을 귀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은사 주시고 온전한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롭게 사는 길입니다. 이럴 때 야곱이 변해서 이스라엘이 되었듯이 우리의 생애에도 복된 변화가 미래에 있게 될 것입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