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은 어느 책에서 본 ‘인생에서 실패하는 법’입니다. 첫째, 가장 시시한 저항을 하라. 도덕적·영적 문제에 있어서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라. 양다리를 걸치라.
둘째, 교회의 성도된 자격을 멀리 하라. 교회에는 가고 ‘싶을’ 때만, 그리고 아주 편리할 때만 가라.
셋째,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들춰내고 비판하라. 당신 자신의 결점은 될수 있는대로 무시하라.
넷째, 그리스도와 또 그 교회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라. 사회 생활에는 종교를 개입시키지 말라.
다섯째, 당신에게는 스스로 엮어가야 할 삶이 있다.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 이전에 돈과 사업을 먼저 생각하라. 이 가운데 당신이 취하고 있는 모습은 없습니까?
성공을 향히 정신없이 달려가는 당신이 결국 만나게 될 것은 실패와 허무 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의 자리에 할 말을 잃은 채 서있게 될 것입니다.

세상 중에 거할 때 당신이 그리스도인임을 기억하는가?
세상일로 바쁠때는 언제든지 하나님은 뒷전으로 물러나 있지는 않은가?
사 42:18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사 42:19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사 42:20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믿음의 용사가 되자 (단 3:14-18)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리시리이다
(단 3:17)
아이들이 여러가지 질병, 즉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홍역을 앓기도 하면서 자라는 것과 같이 신자들의 신앙이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시련과 장애물들이 있는데 이것들과 싸워서 이겨야 믿음이 점점 자라게 되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용사가 되고 큰 일도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날씨도 기도하기 아주 좋고, 새싹이 돋아나고 있는 것을 보니 저도 영적인 새힘을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원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그 곳 목사님이 어떤 사람이 큰 목적을 가지고 산 속에 들어가 소나물을 붙잡고 며칠 동안 울부짖으며 기도하다 소나물를 뿌리째 뽑아냈는데 그 후 응답이 왔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어느 사람이 자기도 문제가 있으니 산에 가서 소나무를 하나 뽑아야겠다면서 산에 올라가 과히 어렵지 않게 뽑을 수 있는 소나무를 붙잡고 하루 밤 끙끙대다 과연 그 나무를 뽑았다고 합니다. 그러고서는 내려와 하는 말이 "나도 소나무를 뽑았는데 응답이 오지 않던데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큰 소리로 '믿습니다' 하고 외치고 기도한다고 해서 응답이 오고 믿음이 오는것이 아닙니다.
오직 흔들리지 않는 강한 믿음의 용사가 되려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몇 가지를 버려야만 합니다.
1. 의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기도도 많이 하고 '믿습니다'라고 고백도 많이 하지만 그 속에는 의심이 그대로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막 11:23,24에 보면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으며 "믿는 자에게는 능히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 중심에 있는 의심을 없애고 응답이 올때까지 우리는 계속 기도하되 약속의 말씀을 굳세게 붙잡고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믿습니다"를 몇 백번 외쳤어도 기도하고 나서 내 생각대로 얼른 안된다고 의심해 버리면 그것 자체가 벌써 확실히 믿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용사가 되기까지는 반드시 의심의 고비가 옵니다. 기도하고 믿는 것 같은데 의심이 오고 기도하기 전보다 상황은 더 안좋게 전개되는 것같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계속 믿고 기도하며 나아가야만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원에서 20년 묵은 축농증을 기도로 나은 한 장로님이 내게 간증하시는데, 어느 일본 여자가 관절염으로 다리를 절단하게끔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여자분은 한국의 기도원에 와서 기도를 하면 나을 것 같은 믿음이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우리 나라의 어떤 기도원으로 오셔서 금식 기도를 했답니다. 금식한지 13일째 되니까 다리가 더 부어오르고 악화되어서 주위에서 금식을 당장 중단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경고했는데도 필사적인 믿음으로 작정한 15일의 금식 기도를 마치니까 주님의 은혜로 기적적으로 완쾌가 되었고 그 후에 그 기도원으로 신혼 여행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믿음의 과정에 있어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쳐올 때가 있습니다. 만약 그때에 '그러면 그렇지' 하며 의심해 버리면 그는 믿음의 용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감각으로는 느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믿고 기도한 것과 반대 현상이 일어나도 의심하지 않아야 그 믿음이 바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이라는 물건을 그릇에 담기 전에 과연 그것을 담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어 있는가를 흔들어 보십니다.
마치 우리가 물건을 담아둘 때 아무 것에다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릇에 담아도 될까 하고 그릇을 잘 살펴보고 견고성을 확인한 후에 담아 두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모든 의심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 14:13에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오직 의심을 버리고 믿음을 굳게 가질 때만 더 강한 믿음에 이르게 됩니다.
2. 낙심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난 다음 다 낙심해 버렸습니다. 왜그런가 하면 그들의 메시야관(觀)은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 있는 메시야관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유대의 왕이 되시려니 하는 인간적인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비참하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니까 그만 낙심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에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또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에 올바른 믿음을 갖게 되어 부활의 주님을 증거하면서 담대히 목숨을 버리며 순교했던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는 낙심할 수밖에 없는 시련이 닥쳐 올 때가 있습니다. 축복 받을 일을 했다고 생각되는데 축복은 오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더 안되고 기도는 열심히 했는데 일은 더 틀려가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낙심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응답이 안오는 것이 응답일 수가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른이 쓰는 면도 칼을 달라고 할 때 줘야 하겠습니까? 주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으로 구할 때는 응답이 안오고 그 욕심의 자아(自我)가 꺾어져야 합니다. 낙심하고 원망하고 쉬운 자아와 자기 중심적인 고집 이 깨어진 후에야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기의 외동딸이 귀신들렸을 때에 예수님께 나와서 고쳐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제자들이 하도 딱해서 예수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보냄을 받았지 이방인을 위해서 보냄을 받지 않았다고 하시며 냉정히 그 여인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또 와서 애걸하였습니다. 그때도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주겠느냐' 하셨지만 그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또 간구하며 '주여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먹습니다' 하며 계속 믿고 나올 때에 주님께서는 '네 믿음이 크도다'하시며 그 여인의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이 많은 과정 속에서 그 여인의 믿음은 자랐고 또 그 여인의 믿음이 자라도록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시험하신 것입니다. 믿음이 약할 때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믿음으로 시련을 견디고 나올 때에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우상 앞에 절하라고 하며 만일 절하지 않으면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 던져 넣겠다고 했으나 그들은 대답하길 '만일 당신이 불꽃 가운데 우리를 던져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이고 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며 믿음으로 굳세게 나아갈 때 그들은 풀무불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쳐오더라도 낙심지 말아야 그 믿음이 올바른 믿음인 것입니다. 그때야 비로소 믿음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낙심은 불평과 원망을 낳고 원망은 불순종을 낳아서 결국 마귀의 밥이 되게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생을 얻고 하늘 나라를 소유한 사람들이므로 땅 위에 무슨 일이 임한다해도 낙심이란 있어선 않되고 영원한 긍정, 영원한 믿음만 가져야만 합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3. 유혹과 타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풀무불 가운데 넣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이제라도 우상 앞에 절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바벨론 제국의 황제가 직접 와서 사정하듯이 말입니다. 웬만하면 '에라 이번만 위기를 모면하고 보자' 하기 쉬웠겠으나 그들은 그 달콤한 유혹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 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하고 담대히 뿌리쳤습니다. 이처럼 느부갓네살 왕이 타협을 요구하며 오듯이 마귀란 놈은 이렇게 달콤하게 혹은 위협적으로 타협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응해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왕은 분노해서 불을 7배나 더 뜨겁게 한 후 그들을 결박하여 불속에 던졌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분과 함께 걸어 다니며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고 살아나왔던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는 이와 같이 마귀의 유혹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혹을 과감히 거절하고 정면 대결을 해야 합니다. 죄나 마귀와의 타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배가 항해하는데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일어날 때는 정면으로 충돌해 나가지 않으면 그 배는 뒤집히고 마는 이치와도 갚습니다.
행 19:19 이하에 보면 마술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 마술하고 점치던 책과 은으로 된 도구 5만량 어치나 되는 것을 다 불에 태워 버린 일이 나옵니다. 아마 그때 가룟 유다가 있었으면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거나 가난한 교회를 도와 주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죄와는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절대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심나는 것, 마귀적인 것, 거리끼는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분명하게 결정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인정사정 볼 것고 없고 계산해서 따져볼 것도 없습니다.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믿음도 온전해지고 응답도 빨리 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과감한 믿음의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축복을 받아서 믿음의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물질의 욕심을 초월할 때 물질의 축복을 쏟아부어 주시고 명예에 초연할 때 명예도 주시고 죽는 것을 겁내지 않을 때 참 살 길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심을 버리고 낙심을 버리며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므로 승리하는 믿음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으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