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만은
쉽게 화를 내며
항상 강한 척 자기를 포장하고
자기 자신이 특별하고 유일하다고 느끼며
스스로에 만족하며
자신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느니라.
교만은
독립정신의 가면을 쓰고
자기 자신을 능력자로 여기며
스스로를 높여
칭찬과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느니라.
교만은
비교하기를 좋아하고
판단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기 좋아하며
남이 높아지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며
불만족과 불평 속에
스스로를 끝없이 채찍질하여 자책하느니라.
교만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주기보다 받는 것을
칭찬하고 격려하기보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핑계거리를 찾아 합리화에 능숙하니라.
교만은
인내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휩싸여 자주 고독감에 빠지며
언제든지 두 가지 마음을 품어
상황과 환경에 집착하며
이웃의 평가에 예민하고
끝까지 자기만을 고집하느니라.
결국
교만이 불안정한 정서와
열등의식의 뿌리로부터 빚어진
사생아임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자기를 깨닫게 되리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니라.

내 스스로 어떤것도 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라야 비로소 인간은 교만을 내려 놓는다,
당신에게 남은 것이 있을 때 내려 놓기를 바란다.
[욥 33:17] 이는 사람으로 그 꾀를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겉사람과 속사람
(고후4:16-18)
고후 4: 16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인생의 두 부분 곧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 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 가운데 겉 사람과 속 사람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받고저 합니다.
1. 겉 사람에 대하여 성경은 겉 사람 곧 육신을 흙으로 지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창2:7) 인체의 요소들에 흙의 성분이 있는 것은 과학자들도 인정합니다. 그것은 인체 중에는 소금, 금속원소, 인, 산소, 탄소 등 제반요소들이 있는데 이 모두가 흙의 성분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생물학자의 말을 빌리면 인체의 구조가 26조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세포들로 구성된 복잡 미묘한 생명유기체라는 것입니다. 구조상으로 말하면 뼈가 232개 창자의 길이 6m-7m, 1분간의 맥박이 72번 피가 온 몸을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23초라고 합니다. 그리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이 몸을 가지고 행위계약만 지켰더라면 영생할 존재였지만 그 법을 어김으로 형벌을 받아 겉 사람 육신이 병들고 늙고 시들어지고 사람은 후패」합니다고 하였습니다. 후패(朽敗)란 썩을 후 패할 패란 말이며 썩어서 못쓰게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체가 죽어 썩어 버린다고 여러 곳에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90 :3-6 에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의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친친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베인바되어 마르나이다"고 했고 이사야 40 :6-8 에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고 했고 약1:9-11 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 라"고 했고 벧전 1:24, 25 에는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 라" 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인생은 화초와 같이 처음은 푸르고 아름다우나 얼마 후에는 시들고 마르고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예화 어느 과부에게 유복자가 있었습니다. 심한 병으로 약도 쓰고 굿도 하고 경도 읽었으나 효험이 없었습니다. 누가 말하기를 "예수 믿으면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로 찾아가 믿겠으니 아이를 고쳐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여러 번 찾아가 기도했으나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장사하려고 하니 과부가 흥분하여 "언제는 병 고쳐 주겠다고 야단하더니 이젠 내 아들 파묻자고 ! 안 죽었어 ! 자는 거야 ! "하고 야단치는 바람에 그 날은 그냥 보냈고, 이튿날 동네사람들이 가서 죽었으니 파묻자고 하다가 또 쫓겨났습니다. 이웃에서 죽을 쑤어 주니 자기는 먹질 않고 죽은 아이의 입에 넣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중 울다가 지쳐 잠든 사이에 죽은 아이를 뺏으려 하다가 또 들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4일째가 되니 무더운 여름날이라 썩어 냄새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이젠 정말 죽었구나! 내다 파묻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리 사랑하는 옥동자 홍안소년 미인이라 할지라도 숨 떨어지면 썩는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허사가」중에 "모든 육체 풀같이 썩어버리고 그의 영광 꽃같이 쇠잔하리니 모든 학문지식도 그러하리니 인간일생 경영사가 바람잡이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과학적으로 인생이 왜 노쇠하여 죽는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인체의 세포가 그 분열작용에 의하여 회복 재생하는 것이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하는데 그 회복이 매 7년마다 된다는 것입니다. 식물 공급을 거침없이 받고 또 해로운 노쇠물의 제거를 계속하고 있는 한 얼마든지 장수해야 할 터인데 실제는 그렇지 않고 늙으면 쇠약해지고 병들고 죽고 마니 이는 초자연적으로 사람에게 정하신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흙인 까닭이 아니고 범죄 한 까닭에 흙인 육신이 병들고 죽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이 범죄 한 까닭에 장수하지 못합니다고 하셨습니다.
욥 8 : 9 에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고 했고 시 90 : 9, 10 에는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 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고 약 4 : 14에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겉 사람은 흙으로 된 연약한 인생인줄 알고 겸손하게 살자, (아브라함)은 티끌과 재 같은 인생인줄 앎으로 복을 받았으며 (바울)은 질그릇이라고 겸손히 말하며 겸손한 삶을 통해서 복을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자 (히틀러)는 인생이 흙인 것을 몰랐다. 오만불손하여 목사들에게 "나를 따르라 나는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그가 어디서 죽었는지 흔적조차 없습니다. 계란을 가지고 바위를 깨지 못하는 것처럼 진흙인 인생이 창조주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그 얼마나 가소로운 일인가! 찬송(31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2. 속 사람에 대하여 사람은 겉 사람 곧 육신만이 아니라 속 사람 곧 영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인생을 생물학적인 존재뿐이라면 인생의 가치는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산다는 것이 단순히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존재뿐이라면 다른 하등동물과 비교해서 나은 점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속 사람 영혼을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창2 : 7에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비웃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인체의 생명을 넣어 주신 신비로운 일을 시적으로 표현하여 알기 쉽게 기록한 것뿐인 것입니다. 인생은 아무도 생명의 시종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언제 시작되며 언제 끝이 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생만민(天生萬民) 또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신론적 유물주의는 인생을 물질뿐이라고 하지만 이는 인생의 일면만 보고하는 말이지 영적 실존임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말인 것입니다.
(이 효상)씨가 몇해 전 학생의 날에 강연하는 중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나의 어느 부분을 가르쳐서 이 효상이 라 하겠는가? 결코 육신의 어느 부분을 이 효상이라고 못할 것입니다. 육신은 이 효상이에게 속해 있는 것이지 육신 이것이 이 효상이가 아닌 것입니다. 이 효상이는 영적 실존인 것입니다. 만일 나와 두 다리가 교통사고로 떨어져 없어졌다고 하자 나를 부를 때 이 "효상이의 3분의2 야" 라고 부르겠는가? 그럴수가 없는 것은 육신 만가지고는 이 효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학생 중 박 이라는 학생이 주먹으로 남을 때렸을 때 박 아무개의 손은 육개월 근신이라 하겠는가? 그럴 수가 없는 것은 그 손이란 물질에게 범죄 책임이 없는 까닭입니다. 박 아무개는 영적 실존인 것입니다"라고 유물론을 반박하더란 것입니다.
결코 겉 사람 육신만을 두고 아무개 라고는 못하는 것입니다. 자동차와 운전수가 다르듯이 속 사람과 겉 사람은 다른 것입니다. 만일 인생을 육신만 가지고 가치를 따진다면 짐승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승은 죽어도 고기, 가죽, 기름, 뼈 등 이용가치가 있지만 사람은 죽으면 썩을 뿐 하등의 이용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만일 겉사람 육신뿐이라면 짐승보다 못한 것입니다. 인생이 귀한 것은 영적 실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점은 종교성, 기억력, 추리력 창의력이 있는 속 사람 곧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 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적 실존인 인생은 영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기 전에는 재물 지식 권세 기타 좋은 것을 아무리 많이 가진다고 해도 참된 만족은 없는 것입니다. 보라!
무신론자 (니체)는 하나님을 배척한 나머지 마침내는 정신병자가 되어 12년 동안이나 고생하다가 56세로 죽고 말았으며 (나폴레옹)은 "아! 나 나폴레옹은 조금 후에는 구더기의 밥이 되겠구나 ! "하고 낙망 중에 갔습니다.
반면에 주를 믿는 성도들을 보라! 희열에 넘쳐 죽음이 다가와도 내세 영광을 보고 기쁨으로 건너갔습니다. 스데반집사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얼굴이 천사와 같았으며 폴리갑은 "엘리야가 하늘에 올라간 것처럼 나도 올라가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고 기쁨으로 화형을 당했으며 수산나는 '내가 죽거든 하나님께 찬송을 하라"고 슬퍼하는 자녀들에게 유언했으며 무디는 "땅은 물러가고 하늘이 열리는구나"라고 기쁨으로 떠났으며 박관준 장로는 "하늘에서 전보가 왔구나"고 하면서 떠나갔습니다. 이 분들은 예수를 믿어 속 사람 영혼이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겉 사람 육신은 병들고 시들고 늙고 죽음이 와도 기쁨으로 건너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믿는 자는 겉 사람이 후패해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새로워질 뿐 아니라 겉 사람 육신도 영화롭게 때가 되면 부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롬 8 : 23은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노니"라고 하셨습니다. 칼빈 선생은 중병을 앓고 무척 고생을 했다. 이틀에 한번씩 앓는 심한 두통, 심장병, 폐병, 위장병으로 하루 한 끼씩 밖에 못 먹었으며 각기, 치질 신경통으로 보행도 곤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55세로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롬 8:18에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 여러번 외우면서 희열에 넘쳐 주의 품에 안겼다 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육신은 병들고, 시들고, 늙고, 죽음이 와도 두려워 하지 마세요 낙심하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는 날마다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고 그 뿐 아니라 겉 사람육신도 영화롭게 때가 되면 부활을 한다는 것을 믿으시고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며 생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