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지성의 풍토는 과학적 실증주의다. 과학은 진리의 방법론으로서 크게 평가해야겠지만 절대화시키면 미신이 된다.
과학 절대주의가 사방으로 공격해서 초자연적 기독교를 반지성, 반과학, 반사회적인 것으로 지적 압력을 가하고 세뇌운동을 하고 있다.
요즈음 나오는 영화에서 보면 핵전쟁이나 가공할 세균전으로 인류가 전멸상태가 된 처절한 현장에 상상소설의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신이여 당신은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였느냐고 고발하고 기도하는 사람의 허상을 냉소하게 한다.
성도들이여, 악마는 얼마나 천재적이고 문화적이며 심리학적 사회학적 현대 지성적인가 보라. 속지 말라.
기독교는 그 기원부터 초자연적이다.
기도도 초자연적이며 그의 영생도 자연생명이 아닌 초자연적 생명이다. 그의 생활도 초자연적 성령생활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과학적인 사고아래 살아가면서 신앙이 추구하는 신비주의적, 즉 초 과학적인 신앙이 침해를 받는다.
당신의 신앙이 과학적 사고에 침노를 당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요 12:37-38] (37)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38)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노아의 믿음
히11:7
하 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한지 1600년이 지날 즈음에 온 땅에 죄가 가득 참을 보시고 물로 세상을 심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구원 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가가 오늘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사건이나 인물이 신약에서 여러 번 반복되어 언급되었다면 그 사건은 오늘 우리 에게 구원의 모형으로 보여준 대단히 중요한 관계임이 틀림없습니다.
물심판때 노아 가족의 구원은 예수님께서 직접 마태복음에서 언급했습니다. 히브리서, 베드로후서 에 언급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한결같이 전 우주적 심판 곧 장차 세상에 임할 불심판의 모형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의 구원도 노아의 믿음과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불심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고 종교생활을 하고 있으나 안타가운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대 한 지식의 충만 곧 성경지식에서 비롯된 행위들 주일성수, 십일조 헌금, 기도, 봉사, 선행 등이 뒤 따르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들이 현세에 대한 기대나 막연한 내세에 대한 기대심리에 불과 할뿐 노아처럼 직접 심판을 바라보고 심판을 준비하는 믿음의 행위가 이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불 편화 되면서 기독교 지성주의 기독교 유물주의로 문화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슨 동기와 목적으로 예배당에 나가십니까?
그냥 습관적으로, 가족 가정의 안녕을 위한 액땜식, 마지못한 민방위 훈련식, 특별한 목적교리만 그냥 좋은 것 같아서, 저주가 두려워서, 율법에 찌들려 서 입니까? 불심판을 대비코저입니까?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심판의 날 바라보고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설마가 아니라 100% 심판을 믿고 심판을 대비한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노아를 구원시킨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막연하게 구원, 믿음 할 것이 아니라 노아처럼 심판을 대비한 믿음이라야만 진정 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3가지 모습으로 드러났습니다.
첫째,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은 믿음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셋째, 방주를 예비하는 믿음
첫째,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은 믿음
노아는 세상 만사를 다 보았으나 홍수로 전 세계가 심판 당하는 것은 아직 본 적이 없습니다. 심 지어 비라는 것조차 그때까지는 성경에 등장한 적도 없습니다. 신학자들에 의하면 노아때 까지는 아직 비가 내리지 않은 시대였다고 말합니다.
노아는 전혀 보거나 경험해 본적이 없는 홍수의 심판에 대하여 하나님의 경고하심을 받아들였습 니다. 하나님의 경고하심이 "God told him"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노아는 물심판의 환상이나 꿈 그리고 그 비슷한 신비체험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막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나님 말씀은 너무 무섭습니다.
창3: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 한마디에 6,000년이 넘도록 모든 사람이 다 흙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자가 되 더라도 지옥에는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도 무섭지 않습니까?
아직 우리는 불심판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환상 속에서, 꿈속에서, 음성으로라도 듣고 보지 못 했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불심판 경고하심을 1% 의심 없이 믿고 아멘으로 화답한 그것이 노 아와 같은 믿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경외함은 "God speak and he obeyed"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 했다는 뜻입니다. 말씀에 복종 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주체이고 우리는 듣는 객체입니다. 노아는 하나님에게 따지지 않았습니다. 묻지도 않았습니다. 말없이 복종한다는 모습은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에는 절대 거짓이 없다는 신뢰의 선포입니다. 심지어 노아는 언제 심판하실 예정이십니까? 나에게 살짝 언지 해 주시면 내가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묻지 않았습 니다. 배를 어떻게 만들까요 라고 묻지도 않았습니다. 노아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 따랐습니다. 노아의 생각, 경험, 지식을 모두 버리고 말씀에만 복종했습니다. 노아는 심판의 날짜를 몰랐습니 다. 노아에게 심판은 100년 뒤의 일이었지만 노아는 그것도 모르는 채 무려 100년을 믿음으로 기 다렸습니다. 말씀에 복종하는 믿음이란 왜, 언제라는 의구심이 따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언제, 왜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 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에 감히 견줄 수도 없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저항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까지도 이같은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하나님은 때와 시를 정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든 지 불로 세상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은 불심판의 때를 자기들이 정하는 거짓말씀을 조작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비밀로 하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수 없다는 저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당장 오늘이라도 심판이 임한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심판에 대한 대비는 관심 없고 다만 종교 생활, 기독교 문화 생활 또는 세상 복이나 받고 세상에 안락이 나 누리겠다는 것은 예수님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은 거부하는 사악한 죄악입니다.
오늘 이 시대도 노아의 때와 다름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끔찍한 지옥불의 나날이 다가 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무런 인식 없이 시집가고 장가가고 종교생활하며 살아갑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임박한 진노를 철저히 무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천국 지옥은 구멍가게 구색 맞추기 식으로 어쩌다 한 번 전 하고 있고 심지어 천국 지옥을 믿노라 하면서도 100% 예수님의 피가 아니라 자기의 공로를 살짝 추가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복종치 못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말씀에 절대 복종치 않는 이 들은 노아 시대와 소돔 고모라처럼 결국 불심판을 받아 영원한 고통의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입 니다.
셋째,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는 믿음
사실 방주는 믿음의 결과이며 순종의 행위에 해당합니다. 비 또는 홍수가 날 징조나 조짐이 전혀 없었지만 산꼭대기에 우뚝선 방주는 바로 믿음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입술로 믿습니다 라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 라 방주를 짓느냐 짓지 않느냐의 형태입니다. 만일에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설마 했거나 의심 이 있었다면 아니 물심판에 관심이 없었다면 입술로는 아멘 했겠지만 실제로는 100년에 걸친 방 주공사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노아 당시의 산꼭대기의 방주 공사는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정신나간 짓이라는 조롱을 받았을 것입니다. 노아의 믿음은 세상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따르는 신본주의 결과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노아처럼 방주를 짓는 행함의 믿음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방주는 무엇일까요? 노아의 가족을 살린 방주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이루 어진 것으로써 바다 위에 떠있지만 바닷물이 전혀 들어올 수 없는 거룩한 배, 육신의 옷을 입고 세상에 오셨지만 죄없는 아들로서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의 피를 흘리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 수그리스도가 바로 구원의 방주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 의롭게 되어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노아 당시 심판때에 방주 외에 구원의 길은 없습니다. 오늘 불심 판이 도래하면 예수님외에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흔히 예배당을 방주로 알고 있지만 이 건물은 불심판때에 돌 하나 남김 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예배당 의자가 방주가 아니라 예수그리스 도께서 나의 죄를 100% 해결하셔서 의롭게 되었다는 확신이 방주 안에 들어가는 구원의 믿음입 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왜 방주 안에 들어가지 않았을까요?
마24:37-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들은 세상살이에 바빠서 물심판에 관심 갖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전 혀 무지한 백성이었을 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 보다 더 잘 알 고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노아 주위에는 노아의 형제와 친척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노아는 노아의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정확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아담과 함께 같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아담이 930에 죽고 라멕은 아담이 죽기 54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노아의 아버지는 아담에게서 생생한 하나님의 창조와 신성을 깨달았을 것이며 노아는 아 버지 라멕에게서 큰 은혜를 체험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할 당시는 모든 사람이 가장 가까이서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인데도 그 들은 하나님 말씀보다는 세상이 더 즐겁고 좋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외면했습니다. 오늘날도 수많 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고 율법 쫓아 성전건축하고, 십일조하고 복받겠다고 율법에 찌든 목사 말 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율법에 찌든 목사 섬기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정작 지옥을 보면서 불심판을 보면서 십자가 피로 100% 죄씻음 받고 이미 방주 안에 들어와 있음을 확신하는 의인은 얼마나 될까요?
교인들까지도 천국 지옥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 준비를 위한 의인됨에도 큰 관심이 없고 마치 노아 시대처럼 세상일에 취해서 그럭저럭 즐기면서 종교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에 관심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비하여 이미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까?
결론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세상을 불로 심판한다는 모형이고 노아의 물심판은 온 세상을 모든 사람에 대한 심판의 모형입니다.
우리는 노아의 사건을 통해서 보이지 않은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노아를 조 롱했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로 죽음을 맞이하는 끔찍한 순간에 비로소 노아가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기회는 이미 지나가 버린 후였을 것입니다. 슬프게도 오늘날도 하나님의 경고하 심에 부주의한 사람들은 천국지옥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며 그들은 영혼구원들 부르짖는 것을 천 박하게 여기며 고상한 척 성경에서 영혼 구원 외에 다른 것을 붙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날 참으로 경계하는 것이 있습니다. 소위 기독교 지성주의자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그 리고 기독교를 하나의 이념으로 받아들이는 성경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속에는 하나 님의 경고하심을 무시하는 악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공부, 기도, 찬양, 선교활동을 통하여 가장 인텔리하고 경건한 기독 인처럼 드러내 지만 실상 그들에게 하나님의 경과와 천국 지옥 불심판을 말하면 그들은 무식한 종교인 취급을 합니다. 하나님의 경고에는 귀를 막고 다른 것으로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하지만 실상 지옥에서부 터 시작되지 아니하면 의인이 되려는 자기 목적도 불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십자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아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동의합니다. 성경지식, 구원의 지식, 복음의 지식을 새롭 게 많이 아는 이념의 쾌락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노아의 믿음을 본받아서 말씀에 복종하여 하나님의 불심판을 준비하는 믿음으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