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일일예화말씀묵상 2010년 12월 29일 (수) -다시 쓰는 개미와 매미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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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깊은 교제생활이 이루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
개미와 매미가 살았다. 개미는 눈만 뜨면 열심히 일했고 매미는 눈만 뜨면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어느 날 둘은 뽕나무 위에서 만났다. “개미야, 너 무엇 하러 여기에 왔니?” “나는 오디를 가져가려고 왔지. 너는?” “나는 뽕나무를 찬미하러 왔지.” 개미가 혀를 찼다. “불쌍한 매미야, 정신 좀 차려라. 이 바쁜 세상에 찬미가 다 뭐냐? 오디나 물어 나르지.” “네가 더 불쌍하다. 먹을 만큼만 가지면 됐지. 그렇게 모아서 뭐하니?” “많이 가지는 것이 힘이야.” “그것은 함정이야. 지나치게 소유하면 곳간이 오히려 너를 부리게 될걸.” 개미는 화를 내며 떠났다. 개미는 계속해서 모았다. 쉴 틈도 없었다. 곳간을 또 짓고 또 지었다. 그러나 매미는 그 날의 먹이로 족했다. 작은 이슬 한 모금에도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을 매미는 노래로 옮겼다. 가을이 오기 전에 매미는 죽었다. 속의 것을 모두 노래로 다 불러 버린 매미는 한 꺼풀 남은 마지막 허물마저도 훌훌 날려 버리고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일생을 모으기만 한 개미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많은 곳간을 남겨 두고 가는 것이 원통했고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지 못한 것이 그제서야 후회가 되었다. 그러나 이미 개미의 해는 지고 없었다.
당신은 올 한해 자신의 곡간을 채우는 일에 너무 바쁘시지는 않으셨습니까?
[마 6:26]
제목 | 좋은편을 택하자 본문 | 눅10:38-42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여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 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 10:38-42
한 국가가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을 본받으면 그 나라는 틀림없이 부강해집니다. 가정도 부강해 집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집에 있는 좋은 일을 본받으면 그 가정은 화목해 지고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의 좋은 것을 본받을 때 성공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시대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상스러우리 만치 나쁜 버릇을 닮으려고 합니다.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전서 1:14도 “너희가 이전에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죄수들이 교도되어 출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교묘한 수단과 방법을 배워 나온다고 합니다. 우리는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마5:48)
제일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환자에게 제일 좋은 것은 건강입니다. 얼마 전 택시에 치여 사경을 헤메던 성도 한 분이 계셨습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지혈이 되지 않아 병원에서도 살지 모르겠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 그 분이 나왔습니다. 그 분은 “목사님, 이번에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을 체험했습니다. 이렇게 회복될 줄은 몰랐습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건강하게 되는 것, 그 이상 좋은 것은 없었습니다. 집이 없는 자에게는 좋은 집이 마련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대학입시에 합격했다는 것이 제일 좋을 것입니다. 요즈음 학생들이 좋은 의복, 좋은 신발을 신고 다닌다고 합니다. 무엇이든지 값이 비싸야 합니다. 유명 메이커의 상표가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것은 아무리 좋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쇠하여 집니다. 낡아지고 싫증나고 변하여 썩어지고 맙니다.
야고보서 5:1 이하에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 저희 옷은 좀먹었다.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다”그랬죠? 마태복음 6:19에 “너희가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좀과 등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6:7이하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육신을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을 누린 자가 솔로몬입니다. 그는 땅위에 있는 모든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전도서 2:11에 보면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의 시편 84:4에서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고, 10절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좋은 편을 택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3:2-3),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3:5)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27에는 예수께서 주시는 평안이 위에서부터 오는 평안이라고 합니다. 가장 큰 힘은 권력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돈이 힘이다’라고 말들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얻는 새 힘이 위엣 것입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이십니다(시 18:1). 건강도 그렇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게 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신명이 28:12에는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어서 축복하신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침마다 그 날이 좋은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베드로전서 3:10에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좋은 날은 이 땅에 살면서 예수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날이 좋은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과 동시에 거듭 나고 속죄 받는 날이 좋은 날입니다. 성도는 죽는 날이 좋은 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8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환난이 기다리고 결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행 20:22).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사느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어떻게 죽느냐’는 것이 중요하지요. 요한계시록 14:13에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죽음의 날은 수고를 그치고 쉬는 날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자에게는 진노의 날이 옵니다. 주님을 영접한 자에게는 기쁜 날이 옵니다. 그날이 진실로 좋은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좋은 곳은 어디입니까? 히브리서 11:16에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입니다(고후 5:1; 요 14:2).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2:10-14 말씀처럼 다윗의 동네에 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영광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요 1:12).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입니다. 하나님은 절망 속에 있는 자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힘이 없는 자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 15:10).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후서 11:30이나 고린도후서 12:5-9을 보면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좋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좋은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편을 선택한 우리는 이제부터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사람은 복음을 전할 소명을 가진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달리 70인을 세우시고 각처로 둘씩 보내셨습니다. 추수할 일군을 요구하십니다(눅 10:1).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야 복음 전하는 자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야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눅 10:16). 70인은 기뻐서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귀신도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어떤 능력보다도 이름이 하늘의 생명록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에 강도 만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 진정한 이웃입니까? 레위인도, 제사장도 그냥 지나쳐 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제도화되고 의식화되어 버린 교회 의식이나 형식에 매여 있지 말고 피투성이가 된 현대인들을 치료해 주고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마르다는 부엌일에 열심이었습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잘 대접하려고 온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장만하기로 했습니다. 누가 더 좋은 편을 택하고 있었습니까? 마리아였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편을 택한다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더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하여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성령의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삶의 편에 서서 주님과 함께 일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인생은 선택의 연습이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도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먹고 어디로 가야 할는지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을 잘 하면 좋은 결과가 주어집니다. 선택을 잘못 하면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처음에는 선택을 잘못 한 것 같으나 결과가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마리아가 선택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 세상적인 행복, 부귀를 위해 수고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찾아 수고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현재 우리 앞에 놓여진 수많은 문제들 중에 하나님은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줄 아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와 비진리의 구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을 위해서는 자기의 가치관이 뚜렷해야 합니다. 사람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관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하면 이제는 자연인 아무개로서의 자기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는 주님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아담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인류는 ‘죄’라는 고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두려움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잘못 선택한 경우가 되고 말았습니다. 구약 성경에 문둥이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히브리 여종이 엘리사에게 가면 치료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을 보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여종의 간청으로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나았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좋은 편을 선택했습니다. 자기의 고집과 체면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엘리사의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이면서도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 편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중심의 생활을 해나갑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결과가 나쁘게 되거나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구나’하고 뉘우치게 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결과가 주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고 결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편을 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마리아의 좋은 선택을 통하여 칭찬 받는 성도의 삶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이 보다 아름답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좋은 편을 택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